“고심 끝에 40주년 기념행사는 모두 취소했는데 극우단체가 다른 곳도 아닌 5·18항쟁 심장부에서 유공자 명단공개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광주시가 다음달 16일과 17일 자유연대 등 극우 보수단체가 금남로 5·18민주광장 일대에서 30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 위해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한 데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뜻깊은 40주년 기념행사를 대부분 취소한 마당에 5·18항쟁 역사적 현장에서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5·18을 폄훼해온 극우 보수단체가 집회를 갖겠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유연대와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 극우 보수단체 회원 1000여명은 앞서 지난해 5월 5·18 39주년 기념일 당일 금남로에서 ‘가짜 5·18 유공자’를 가려내고 유공자들의 명단과 공적조서를 공개하라는 집단 시위를 처음으로 벌인 바 있다.
회원들은 지난해 가짜 5·18 유공자가 많아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20일 오후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극우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오는 5월 16일과 17일 금남로 일대에서 3000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면서 경찰에 집회 신고를 낸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집회 신고를 취소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18이 더 이상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며 “5·18의 진실은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의 문제가 아닌데도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이념갈등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려는 세력들이 있어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개탄했다.
이 시장은 “의미깊은 5·18 40주년을 맞아 반목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국민통합을 이뤄야 할 때”라며 “온 국민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한 덕분에 확진자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집단 감염의 우려가 높아 광주시도 기념행사 대부분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더 나아가 “자유연대가 집회를 강행할 경우 감염병 예방과 관리법에 따라 집회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집회 참가자 개인별로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강력한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5월 단체와 광주시민들도 자유연대 등 극우 보수단체의 무리한 집회신고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5월 단체 등은 “지난해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충돌을 유발하려는 극우 보수단체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며 “전 국민을 위협하는 코로나19도 염두에 두지 않는 보수단체 회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고 싶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2018년부터 극우 보수단체 회원들이 금남로를 제집 안방처럼 여기는지 이따금 눈에 거슬리는 집회를 갖고 있지만 대국적 차원에서 인내하고 있다”며 “숭고한 5·18 광주정신을 더럽히고 국민적 재난인 코로나19까지 무시하는 이들에게 향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반시민들도 극우 보수단체의 ‘코로나19 역주행’에 대해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원 문정현(55)씨는 “극우 보수단체가 집회를 갖겠다는 광주 금남로는 1980년 5·18 당시 시민군이 목숨을 걸고 계엄군에 저항하고 격렬한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신성한 장소”라며 “총칼과 군홧발에도 짓밟히지 않은 광주정신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 광주 시민들은 “40주년 5·18 기념행사가 취소돼 무척 안타까운데 보수단체 집회가 일부러 5·18의 상징적 공간인 금남로 집회를 강행하는 것은 상처에 소금 뿌리겠다는 격“이라며 집회신고 취소를 촉구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