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업 지원 안돼” “밤일도 직업” 日코로나 생계비 논란

입력 2020-04-20 16:04
일본 정부가 지난 7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도쿄의 유흥 및 사창가는 텅 비었다. CNN 캡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성산업 종사자들의 생계비 수급 자격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고 미국 CNN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성산업 종사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느냐는 전통적인 논란은 물론, 생계보조금의 수급자격과 액수도 논쟁거리라는 분석이다.

관련 논쟁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108조엔(1220조원)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논의하면서 성인오락업 및 성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배제했는데 일부 인권운동가들과 반대파 의원들로부터 직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성노동과 성보건(SWASH)은 지난 2일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성노동자들을 지원금에서 배제하지 말라. 성노동자와 그 자녀들도 다른 노동자와 그 자녀들처럼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며칠 뒤 일본 정부는 성산업 종사자들도 지원대상에 포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책 초안에 따르면 일본 성노동자 및 고용주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소득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으며, 휴교로 인해 아이들을 돌보러 집에 머무는 성노동자에게도 별도의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CNN은 전했다.

유흥가로 유명한 도쿄의 가부키초 거리 모습. CNN 캡쳐

하지만 TV 연예인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 납세자들의 돈을 사용하지 말라고 거세게 항의하고 나섰다. 이에 대항해서 ‘밤일도 엄연한 직업이다’라는 뜻을 담아 ‘#NightWorkIsAlsoWork’라는 해시태그가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9000여개의 좋아요를 받은 한 트위터 사용자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업계에서 일했을 뿐이며 사치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임대료, 공과금 등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제도적 도움을 요청한다고 호소했다고 CNN은 소개했다. 또 다른 트윗은 “이 나라가 언제부터 사람들의 삶의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는가”라면서 “미혼모들과 생계를 위해 일하는 성노동자들을 버릴 것인가? 편견을 갖지 말고, 직업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여성혐오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암시장 연구기관인 하보스코프에 따르면 일본의 성산업은 연간 약 240억 달러(29조원) 규모이다. 일본에서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는 매춘은 범죄이지만, 다른 종류의 유사성행위는 합법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원 규정과 자격요건을 두고 일본의 성노동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고 CNN은 전했다.

대표적인 고민은 성노동자의 소득을 측정하는 문제이다. 생계비를 지원받으려면 평소 봉급과 소득 감소분을 증명해야 하는데, 성노동자들은 소득이 일정치 않으며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CNN과 인터뷰한 성노동자 미카는 “소득이 정부에 보고되지 않은 프리랜서 근로자들이 어떻게 생계지원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면서 “사실상 신청이 막혔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CNN은 일부 가구에 30만엔(339만원)을 주는 대신 모든 개인에게 10만엔(113만원)을 지급하는 개정안이 다음 주에 정식으로 검토되고 시행된다면 성노동자의 생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방글라데시의 한 사창가에 여성이 앉아 있다. CNN 캡쳐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자 면허를 발급해서 매춘을 관리하는 방글라데시는 지난 달 전국적으로 매춘업체를 폐쇄했다. 현지 언론과 경찰들에 따르면 성노동자가 2000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둘랏디아와 인근의 성노동자들은 집세를 면제받고, 각각 20~30kg의 쌀을 배급받았다.

반면 성 연관 업종이 모두 불법인 말레이시아에서는 성노동자들이 본인 직업을 숨겨야 노숙자와 실직자들을 위한 수당과 임시숙소를 지원받을 수 있다.

CNN은 성노동자의 생계보호에 가장 성공적인 국가로 태국을 꼽았다. 태국 성노동자 인권단체인 임파워파운데이션의 리즈 힐튼애 따르면 성노동자들은 각각 5~8명의 가족을 부양하는데, 지난달 정부가 술집과 유흥업소를 폐쇄한 이후로 일터와 고객을 잃어 집세와 식비를 벌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후 정부가 코로나19 구제대책을 발표해서 실업급여와 지원보조금을 제공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많은 성노동자들이 안도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