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20일 이임사에서 “(한은의) 발권력은 절대 남용되지 않아야 하지만 필요할 때 적절히 활용되지 못함으로써 작지 않은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아울러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 온 ‘인플레이션 파이터’(물가상승 억제자)로서의 한국은행의 명성이 혹시 이제는 극복해야 할 ‘레거시’(유물)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6년 4월 기획재정부 장관 추천으로 임명된 조 위원은 신인석 위원과 함께 금통위 내에서 한은 기준금리 인하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표 ‘비둘기파’다. 두 사람의 견해는 7명으로 구성된 금통위 내에서 대체로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조 위원은 “중앙은행의 권위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로 다져진 지적 리더십과 이에 기반한 정책수행을 통해 획득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임명권자 등 외부인 눈치를 보지 말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러한 점들을 균형 있게 고려해 한국은행이 주도적으로 운전하는 우리 경제는 급정거나 급발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디플레이션(Deflation)행 완행이라는 세간의 우려도 없는, 안락한 열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조 위원과 함께 임기를 마치는 신인석 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달라지는 경제 환경에 맞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이제는 과거와 달리 새로운 중앙은행론(論)이 필요한 시기”라며 “기존에 해오던 전통적인 수단 외에 새로운 통화정책 수단 및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위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충격이 단기에 그치고 향후 성장률이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경제 환경에는 생산, 성장률, 고용, 물가 등 많은 분야에서 중장기적으로 변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 위원은 임명직 금통위원 5명 중 재계 몫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명의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다.
한은 총재 몫으로 임명됐던 이일형 위원은 “떠날 때는 말없이 조용히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별다른 견해나 소회를 남기지 않았다.
후임은 누구
세 위원의 후임으로는 조윤제(68) 서강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주상영(56)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영경(57)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이 2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조 교수(기재부 장관 추천)와 주 교수(금융위원장 추천)는 각각 현 정부에서 초대 주미대사와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을 지낸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금통위 내에서 ‘청와대의 입’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상의 회장 명의로 추천받은 서 원장은 재계 몫에 해당하지만 한은에서 30년 가까이 재직하며 부총재보까지 지낸 한은 출신인 만큼 비둘기파로만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 서 원장 합류로 금통위 내 한은 인사는 당연직 위원인 이주열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를 포함해 3명이 됐다.
임기 만료 금통위원 4명 중 대표 ‘매파’인 고승범(58) 위원은 한은 총재 추천으로 연임돼 2번째 임기를 맞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