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기]장애와 비장애 하모니로 잇고···편견의 물살 가르고!

입력 2020-04-20 11:23 수정 2020-04-20 11:2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완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비장애인에게도 힘겨운 일상의 회복이 장애인에게 쉬울 리 없다. 재난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내몰려 ‘사회적 고립’을 겪은 장애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비장애인들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 봤다.
발달장애인 클래식 연주자 6명으로 구성된 ‘브릿지온 앙상블’단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일원동교회에서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브릿지온, 장애와 비장애를 잇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일원동교회(배준완 목사)의 소예배실에 들어서자 진지한 눈빛으로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응시하는 청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낫 둘, 시이~작!”

리더 김어령(37)씨의 구령에 맞춰 ‘걱정 말아요 그대’(전인권)의 앙상블 연주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 곡이 끝나기 무섭게 ‘집시의 세레나데’가 이어졌다. 격정적인 멜로디 라인을 따라 플루티스트의 입술,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현과 한 몸이 된 바이올리니스트의 팔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발달장애인 클래식 연주자 6인으로 구성된 ‘브릿지온 앙상블’의 합주 연습 장면이다. 코로나19로 크고 작은 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멈춰야 했지만 브릿지온 단원들은 주 5일 빠짐없이 합주를 이어가고 있다.

브릿지온 매니저를 맡은 조태승 밀알복지재단 대리(사진)는 “단원들의 연주가 교육 지원이나 장애인 복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 자립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이들에겐 연습실에 오는 게 출근이고 연주가 곧 업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장애인 복지 여건상 장애인 예술가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갈고닦더라도 성인 예술인으로서의 꿈을 펼칠 기회가 극히 드물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1년 경력을 자랑하는 브릿지온 단원들에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발달장애인 인식 개선을 목표로 지난해 9월 창단한 브릿지온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릿지온 앙상블의 바이올리니스트 박세현(지적장애)양이 지난 16일 일원동교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단원들은 연주자인 동시에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명함을 갖고 있다. 브릿지온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시행하는 ‘문화예술 체험형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지원사업’의 수행기관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기업, 공공기관 등을 방문해 전문 강사와 함께 브릿지온을 소개하고 땀 흘려 연습한 곡들을 들려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문다.

브릿지온 앙상블이 음악에 재능을 가진 장애인들로 구성됐다면 ‘브릿지온 아르떼(Arte)’팀에는 미술로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애인들이 함께 꿈을 펼치고 있다. 앙상블이 연주를 들려줄 때 아르떼 작가들은 미술 체험 활동, 전시회 및 스토리텔링 강사로 나선다. 단원들은 코로나19 이후 강의장과 무대로 향할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합주 연습을 마무리하는 리더 어령씨의 대표기도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어려움을 딛고 아름다운 하모니로 세상과 사람들을 잇게 해주세요.”
김노찬군이 지난 17일 경기도 의정부 동아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역영을 펼치고 있다. 의정부=송지수 인턴기자

희망 향해 물살 가르는 ‘마린 보이’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김노찬(19·자폐성 장애)군은 수영장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처럼 돌변했다. 진지한 눈빛으로 물안경을 고쳐 쓰곤 안승옥(30 장애인스포츠과학연구소 대표) 코치의 신호에 따라 힘차게 발차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장애인 수영선수인 김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코로나19 이후를 바라보며 묵묵히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군이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한 건 지난해 초, 안 코치를 만나면서부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취미로 시작한 수영이 선수생활로 이어질 수 있었던 계기는 김군의 물에 대한 애착과 성실함이었다. 아버지 김재선(63)씨는 “처음엔 고된 훈련이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진심으로 수영을 좋아하고 선수로서 성취감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재선(왼쪽)씨가 아들 김노찬군의 수영 입문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의정부=송지수 인턴기자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두각을 보이던 김군에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겼다. 예정돼있던 수영대회는 연기됐고 설상가상으로 수영장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까지 겹치면서 훈련장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개학도 늦춰지다 보니 개인택시를 하는 김씨가 일을 쉬며 아들을 돌봤다. 경제적 타격도 피해갈 수 없었다.

안 코치는 “수소문해 장소를 찾긴 했지만, 훈련 횟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패턴을 바꿔야 했다”며 “특히 자폐성 장애인은 한번 만들어둔 패턴에서 벗어나면 다시 역량을 끌어올리기 힘들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크다”고 설명했다.
김노찬군(왼쪽)과 조민성군(가운데), 홍승우군이 경기도 의정부 동아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재개될 대회를 목표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안승옥 코치 제공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를 향한 김군의 역영은 멈추지 않는다. 김군은 현재 일주일에 두 번 다른 장애인 선수인 조민성(11)군과 홍승우(15)군과 같은 레인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김군은 훈련 가는 내내 조군과 홍군도 훈련에 오는지 물을 정도로 이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실력도, 나이도 다르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다.

지난 3월에는 밀알복지재단 지원 사업인 ‘점프’의 대상자로 선정됐다. 점프는 KB 국민은행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김군과 같이 재능이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장애 청소년 운동선수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안 코치는 나아가 장애인들이 자립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이면 학교를 졸업하는 노찬이에게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자립이다. 선수이자 사회인으로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노찬군(오른쪽)이 지난 17일 경기도 의정부 동아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안승옥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하고 있다. 의정부=송지수 인턴기자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