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96, 고재경 연출 넌버벌 놀이극 “정크, 크라운”

입력 2020-04-20 09:57

상상을 현실로.. 웃음으로 달리는 놀이의 변주

넌버벌 놀이극 <정크, 크라운( Junk, Clown)>(고재경 연출, 고능석 예술감독, 2020년 4월8~12일 알과핵 소극장)은 버려진 생활용품들을 배우들의 놀이와 상상으로 변주되는 무대를 연극적으로 극대화 시켜 동심과 웃음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버려진 생활용품들은 일상생활에서 작동되지 않는 고물들이다. 고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때로는 동물로, 바다 속 풍경으로 충돌되고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되어 경주를 하고, 고무호스는(자바라호스) 바람을 일으켜 적들을 물리치는 용감한 전사(戰士)로 변신한다. 전쟁놀이는 시간여행으로 변주되며, 상상력을 확장시키고 고물상은 살아 움직이는 현실공간으로 구현된다.

고물오브제를 들고 놀이극으로 전진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구현된 장면은 동심의 세계를 소환한다. 빛바랜 드럼통, 고물바가지, 찌그러진 냄비, 플라스틱, 고무호스, 진공청소기, 고무장갑, 선풍기날개 등 버려진 생활용품들은 무한한 이야기로 재생산 된다. <정크, 크라운>은 상상으로 전복된 이야기 세계이며, 무한한 연극적 확장성으로 배우의 몸은 언어로 변주되고 고물들은 놀이로 재활용되면서 상상을 현실로 구현시키는 극으로 전환된다. 고물들을 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놀이성,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 변주되는 고물들의 이야기세계는 플롯을 형성하고 고물들은 무대를 구현하는 오브제로 표현된다. 고물상은 동심의 놀이터이며 버려진 고물들은 상상으로 재해석된다. 연극적 놀이로 재활용되면서 고물상은 동심(童心)으로 살아나는 이야기 세계 공간이며, 인간본능의 놀이터다.

무대는 특별하지 않다. 고물상을 환기시키는 무대 정면으로 빛바랜 간판과 고물더미들(낡고 찢겨진 우산, 종이박스, 나무상자와 대형 드럼통, 자전거 바퀴와 상상을 자극하는 매달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바가지, 페트병, 낡은 선풍기 날개, 형체를 알 수 없는 자전거 핸들, 자바라 고무호스) 등이 전부다. 무대는 고물더미로 폐허가 된 세계다. 고물들로 작동 되지 않는 세상은 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가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분해되고 해체된다. 고장난 생활용품 오브제들은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각기 다른 이야기세계로 구현되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문다.

고물상은 생활용품들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현실과 격리된 작동될 수 없는 고장난 물건들의 공간이다. 버려진 생활 물건들이 아이들의 동심의 놀이와 시선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극적으로 확장시킨다. 무대는 버려진 알록달록한 우산, 자전거 바퀴와 매달린 플라스틱 바가지, 오래 된 나무상자와 드럼통 그리고 종이박스가 있다. 무대 앞 우측으로는 세발자전거, 찌그러진 주전자와 알루미늄 냄비, 고무호수와 고물들이 연결되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형태를 만든다. <정크, 크라운>은 4명의 배우가 55분 동안 버려진 고물상의 생활용품들을 극적구성의 오브제로 활용하면서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무언(無言)의 언어는 무대 언어로 재생산한다. 배우들은 놀이로 무장하고 고물들은 연극적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며 웃음을 날린다.

배우들 놀이로 구현되는 살아 숨 쉬는 고물들

배우 한 명이 커다란 낡은 고무호스를 돌리며 나온다. 무대는 배우들의 놀이 공간이 된다. 4명의 배우들은 숨바꼭질을 하며 각각 버려진 생활용품들을 들고 나오고 무대 뒤로 계단을 형상화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드럼 통 안에 한 사람이 들어가 있고 아이들의 세계와 이탈된 어른으로 묘사된다. <정크, 크라운>은 어른이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동심의 무대로 전환되면 자전거, 오토바이 경주 에피소드가 된다. 자전거 핸들만 있는 고물은 배우의 의해 신나는 자전거 놀이로 구현되고 플라스틱 손잡이 바가지 두 개를 엮어 오토바이가 되는 절묘함과 속도를 묘사하는 배우들 연기를 따라가면 무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경주 대결로 그려지는 식이다.

무대는 고물 핸들과 플라스틱 바가지만으로도 바람을 만들고, 도로를 질주하며 속도를 경쟁하며 대결하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운전자를 따라 갈 때쯤 찌그러진 냄비 몇 개로 자동차를 표현하는 배우가 등장한다. 플라스틱 바가지 두 개를 연결해 핸들을 만들고 그 위에서 일어서는 오토바이 운전곡예를 배우들이 고물을 활용한 놀이로 동심의 세계를 극대화시키고 꽃가루 날리는 마술로 장면을 구축한다. 이어 한 아이가 선풍기와 낡은 물바가지로 프로펠러로 만들어 비행기놀이를 하며 전쟁놀이로 이어진다. 날렵하게 몸으로 총알을 피하는 배우의 움직임과 고물들은 비행기가 되고 하늘을 질주하며 고물 진공청소기는 적을 물리치는 정의의 로봇으로 변신한다. 공기를 저항을 뚫는 아이들의 놀이로 살아나는 고물상의 아수라장은 폐허의 공간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 이야기의 세계가 된다.


찌그러진 페트병과 고무호스는 물고기가 되고 주전자는 대왕문어로 그려낸다. 버려진 고물들을 이어붙이고 늘이고, 연결하면 아이들의 놀이는 현실이 되고 이야기 마법을 일으킨다. 진공청소기는 바다 생명체가 되고 이어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모자를 눌러쓴 채 물안경을 뒤집어쓴 어린왕자 같은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는 바다의 전경(全景)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장난 자전거 바퀴에 매달려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돌리며 아이들 세계를 바라본다. <정크, 크라운>이 단순한 고물을 활용한 오브제 놀이로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장면을 구현했다면 폐품을 활용한 단순한 놀이극이 되었지만 연출은 놀이로 전진하면서도 거세된 동심을 소환하고 놀이의 기억을 환기시키며 본능을 자극한다.

고무장갑으로 닭들의 광란(狂瀾)을 표현하고 찌그러진 냄비 뚜껑을 머리에 달고 굵은 고무호수를 입으로 물고 코끼리를 표현하고 고무호수는 사자의 얼굴모양이 되고 부채를 엮으면 원숭이가 된다. 파리채를 엮어 공작새를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고무호수들은 코브라로 변신하면서 무대는 코브라, 살모사들의 혈투가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전환된다. 코브라의 독침으로 쓰러진 마법사는 자바라 고무호수가 응급차로 변신하고 찌그러진 냄비는 심장박동기가 되어 상황을 탄력적으로 만들고 고물들은 마법사를 살리는 구급치료 도구가 된다. 마지막 장면은 종이상자와 우산 두 개, 세발자전거로 표현된다. 종이상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변신하고 알록달록한 우산 두 개를 들고 자전거 페달을 밟고 하늘을 날으는 아이들과 무대는 일순간 비가 내리며 무대는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물들의 형태만 존재하는 폐허의 공간이 된다. 비는 본능의 파괴다. 어른의 시선이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내면이다. 찢겨진 우산은 더 이상 상상으로 변주될 수 없는 본능의 마음이다. 배우들의 놀이로 분해된 고물들의 폐기물들이 무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연극적으로 확장되고 동심의 언어로 구현되는 <정크, 크라운>은 쓸모없는 물건으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놀라운 표현으로 4명의 광대(배우)들은 상상의 한계를 무너뜨린다. 재미있고 의미는 크다.

이 작품에서 의미 있는 장면이 연결되는데 하나는, 이야기 도입부분에 4명의 배우들 중 한명은 동심의 세계가 거세된 어른의 이미지다. 세 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나오고 각기 다른 고장난 폐품들을 들고 고물상으로 등장한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리듬과 템포로 뛰거나 걷고, 달리면서 무대 뒤편을 계단으로 설정하고 마임의 움직임만으로 표현한다. 술래잡기 놀이를 하듯 아이들은 놀이세계로 진입을 하지만 배우1은 고물상에 있는 큰 드럼통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의 세계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정크, 크라운>은 동심의 세계가 거세된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상상의 세계다. 고물상에서 다양한 폐품들을 활용해 이야기 세계의 무한한 상상을 만들어내는 아이들 세계의 과거로 들어가 놀이의 본능을 회복시키는 시간여행이며, 아이들한테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공간이다.


두 번째는 선풍기와 고물바가지로 프로펠러를 만들어 비행기놀이와 전쟁놀이의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몸에 두르고 마치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처럼 등장하는 만화캐릭터 인물이다. 어린시절 보자기를 온 몸으로 감싸고 물안경을 쓴 채 골목을 누비며 구원자처럼 지구를 구원할 것 같은 영웅캐릭터의 등장이다. 폐품으로 바다 속 풍경을 만들어내는 장면부터 이 영웅의 등장은 동심의 세계가 거세되어 놀이의 본능이 멈추어져 동심으로 회복될 수 없는 어른내면의 시선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마지막 장면에서 고물상으로 비가 쏟아져 내린다. 더 이상 어린이의 마음으로 무한한 상상의 놀이를 할 수 없는 동심이 거세된 우울하고 어두운 내면이다. <정크 크라운>은 동심을 소환시키고, 거세된 만화의 영웅을 환기시키며 아이의 본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극단 현장과 <정크, 크라운>

이 작품을 제작한 극단은 1974년에 창단된 극단 현장이다. 경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우수한 창작 작품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들을 개발하고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일반 연극과 아동 가족극, 넌버벌 마임극과 언어중심의 우수 연극들을 들고 대학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는 극단이다. 작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쿵쾅쿵쾅 고물 놀이터>를 발전시킨 작품으로 ‘2017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에서 최우수 사례로 선정되었으며 TGR 삿포르극장제, 중국서안국제연극축제와 올해는 인도 4개 도시를 순회하며 서울관객들에게도 호평 받고 있다. 이밖에도 극단 현장은 어린이 청소년극 레퍼토리 작품으로 <뿌앙 뿌앙 할머니와 꼬방 고양이>, <음직이는 움악극 (한여름밤의 꿈)>, <카툰 마임 쑈>, <신통방통 도깨비>, <1인극 신발인형극(순이의 일기)>, <휴먼코미디 (벚꽃엔딩)>과 다양한 일반연극들이 레파토리 되어 상시 공연화 되어 있다.


극단 현장이 지역극단이면서도 넌버벌, 마임극으로 전국 다양한 세대 층의 동심을 소환시키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변주시켜 작품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에 연출을 맡고 있는 국내 유명 마임리스트 고재경의 섬세한 시선과 순수한 동심의 확장성, 독보적인 마임의 테크닉적인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87년도에 데뷔한 마임리스트 고재경은 동심의 세계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배우이자 연출가다. 연출이 바라보고 투영되는 현실세계와 구현하는 무대의 세계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무대는 배우와 연출을 읽고 닮아간다. 놀이는 동심이다. <정크, 크라운>은 배우와 연출자가 그 동심을 읽어내고 놀이로 상상력을 변주시켜 버려진 고물들이 무대로 확장되는 오브제로 고물상은 버려진 폐허의 공간이 아니라 배우들의 몸과 오브제만으로 이야기 세계의 특별함을 표현하는 넌버벌 놀이극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우들의 놀이성들이 더 구체적으로 구현되거나 움직임의 디테일들이 더 묘사되어 상상을 더 확장시켰으면 한다. 어린이, 청소년들과 가족들이 꼭 봐야할 연극이다.

|연출 고재경은

<정크, 크라운> 연출 고재경은 국내 최고의 마임리스트이자 배우이다. 마임을 비롯해 움직임 연출, 넌버벌 연극과 코미디 분야에서는 독보적으로 고재경식 표현으로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87년도에 <카스파르>로 데뷔했으며 1992년도에 마임협의회 신인무대 <기다림의 연속>(공간사랑)을 발표한 후 <고재경의 마임콘서트>, <꿈속의 요정>, <광장 사람 그리고 풍경>, <잠깐만>, <카툰 마임 쑈>, <움직이는 그림>, <비의 선물>, <유홍영, 고재경의 두 도둑 이야기> 등 다양한 작품들이 있으며 지난해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