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외교관 철수 때 북한은 왜 외무성 인력을 보냈나

입력 2020-04-20 06:00
지난달 9일 북한 평양 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봉쇄했던 북한은 외국인 이송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특별 항공편을 운항했다. AP뉴시스

북한이 지난 3월 평양 주재 외국 외교관들을 철수시키려고 특별항공편을 띄웠을 때 북한 외무성 인력도 함께 태워 유럽에 보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일단 유럽으로부터 코로나19 방역에 필요한 협조와 물품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을 하려고 외무성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외무성 직원들은 지난달 9일 평양 주재 외국 외교관들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앞서 독일과 프랑스 등은 북한의 강도 높은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 위반이라며 평양 주재 대사관·공관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인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고려항공 여객기(KOR271)에 이들 나라 외교관들을 태워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냈고, 이때 외무성 인력도 함께 타고 이동한 것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파견된 외무성 인력에 대해 “외화벌이 등 경제 관련 업무를 맡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협상과 관련된 일을 해온 사람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자 북한 당국이 협상에 잔뼈가 굵은 외무성 직원을 유럽으로 급파해 방역 관련 협조 및 물품을 요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회의 등에서 ‘초특급 방역’을 지시했다.

북한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외무성 직원을 파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유럽 모처에서 미국 측과 물밑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북소식통도 “미국과의 물밑접촉을 위해 외무성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