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서류 더 가져와요?” 머나먼 그돈, 고용유지지원금

입력 2020-04-19 18:10 수정 2020-04-19 18:23

“이렇게 준비해 왔는데 맞나요?” “아, 거의 다 갖고 오시긴 했는데요. 이 서류가 더 있어야 해요.” “어휴, 복잡하네요.” 지난 1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4층 고용지원과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대부분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에 대한 상담이었다. 조용한 듯 분주한 시간이 이어졌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1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6일까지 5만1067개 기업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다. 지난해 전체 신청 건수(1514건)의 33.7배에 이른다.

근로자는 월급을 적게 받고, 사업주는 정부 지원금을 얹어 월급을 지급해 고용을 이어가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인 만큼 기업에서도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혼선이 잦았다. 현장에서 확인되고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가 제기해 온 문제점을 종합하면 5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①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신규채용이 안 되는 것 ② 업무 특성과 무관하게 근무 시간·일수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 ③ 소급 적용이 안 되는 것 ④ 절차가 복잡한 것 ⑤ 고용보험을 내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등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 등이다.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문제

200객실 이상 비즈니스 호텔 직원인 40대 이모씨는 “제도 자체가 생소하니까 준비하는데 시행착오가 잦았다”며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잘 설명을 못 해줬는데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교육도 받고 해서 이제는 알겠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휴업의 경우 총 근로 시간의 20%를 초과해야 하는데 근로 시간 설정 방식은 개별 기업마다 달라진다. 일일 근로시간을 줄이는 경우 하루 몇 시간 근로가 적당한지, 주단위로 휴업을 하는 경우 몇 주씩 쉴 수 있는지 등이 제각각이라 기준을 잡는 게 복잡해진다.

개별 기업마다 필요한 인력과 근무 강도가 다른 것도 어려운 점으로 지목됐다. 주류도매업체에서 일하는 60대 신모씨는 “매일 처리할 일거리가 있는 사무직원들은 쉬었다 일을 하면 업무가 과중해지고, 영업이나 배송 직원들은 나와도 할 게 없다”며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게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규채용 안 되는 조건, 한시적으로라도 해제해야”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기간 동안 신규 채용이 안 되는 점은 특히 문제로 꼽힌다. 호텔에서 상담을 나온 이씨는 “최근 한 명이 그만뒀는데 이 사람을 대체할 인력이 꼭 필요하다”며 “그 문제 때문에 계속 (고용복지센터에) 오고 있는데 여기서도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신규채용이 안 되는 이유는 이렇다. 사업 규모를 축소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새 인력을 충원한다는 게 합당하지 않고, 이 조건을 풀어줄 경우 정부 지원금을 악용하는 부당 채용 사례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처럼 특수 상황에 의한 유급휴업과 유급휴직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 이 조건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기업들에 동일한 조건을 내거는 건 경직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핵심부서에서 필수 인력이 퇴사하는 경우 다른 인력으로 대체가 안 될 때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채용이 원천 차단되는 점은 문제”라며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라도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2월부터 어려웠는데…”


고용유지지원금 제공은 신청이 받아들여진 바로 다음날부터 적용된다. 예를 들어 5월 1일부터 유급휴업을 결정하고 지역고용센터에 관련 서류를 4월 30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5월 1일부터 31일까지에 대한 유급휴업 수당 가운데 일부를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제공한다. 즉 소급 적용이 원천 차단돼 있다.

소급 적용이 안 되는 건 급식업계에서 특히 어려움을 호소했다. 급식업체를 운영하는 김호균씨는 2월부터 지금까지 약 2개월 동안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개학이 계속 연기되면서다. 언제 개학할지 모르기 때문에 휴업도 못 하고 두 달을 대기만 해 왔다.

김씨는 “지금이라도 신청하러 갔더니 2~3월 사실상 휴업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안 된다고 하더라”며 “고용보험 꼬박꼬박 내고, 일 없어도 꼬박꼬박 월급을 줬는데 지원을 못 받는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소규모 업체일수록 절차에 부담

지난 16일 기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5만1067곳 가운데 30인 미만 사업장이 4만8226곳(94.4%)이었다. 소규모 기업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복잡한 절차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대한상의가 소상공인 24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고용유지지원금 활용실태’를 보면 신청기업의 46.4%는 ‘복잡한 준비 절차’를, 20.6%는 ‘지원요건의 엄격함’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매출액·생산량이 3개월 월평균 15% 이상 감소하는 등 사업이 급격히 어려워진 경우 유급휴업이나 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제도다. 단축 근무를 시행하는 유급휴업이나 1개월 단위의 유급휴직을 하면서 수당을 지급하면 정부가 일부를 지원한다.

중소기업이나 우선지원대상기업은 휴직수당의 90%, 대기업은 67%까지 지원된다. 근로자 1인에 대해 하루 최대 6만6000원(월 198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려면 피해 입증 자료, 근로자와 협의자료, 근로시간 증빙자료 등이 필요하다.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한 달 뒤 지원금을 받으려면 출퇴근 여부, 수당 지급 등을 확인해 줄 자료도 내야 한다. 영세 소상공인은 신청 자체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천모(59)씨는 “최소한의 직원만 일하는 중이라 신청을 맡길 사람이 없다”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고용복지센터를)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급 방법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기업이 먼저 휴업·휴직 수당을 제공하면 1개월 뒤 실사를 통해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1개월 뒤까지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엄격한 조건과 지급 방식 때문에 고용유지보다 해고를 택하는 이들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지급 후정산’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경제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 절반은 사각지대에…

고용유지지원금의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에 있다. 따라서 지금은 고용보험을 내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나 일용직 등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규모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가량 해당된다.

이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자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특수고용노동자의 고용유지를 돕는 정책을 포함한 고용안정정책 패키지를 조만간 발표하기로 했다.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재원을 고용보험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잡힌 예산은 당초 1004억원에서 5004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보험기금은 정부 예산이 아니다보니 규모를 더 늘리는 데 제약이 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정부가 지원규모를 5000억원대로 늘렸다고는 하지만 3월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인원이 43만 명임을 감안하면 한 달이면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고용보험기금 외에 정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고용불안이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고용유지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도 큰 문제”라며 “제도 및 운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정진영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