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최고 조건 계약 베테랑 박철우, 한전 중심 잡는다

입력 2020-04-19 17:35
포효하는 박철우. 한국배구연맹 제공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최대어 중 하나였던 삼성화재 베테랑 라이트 박철우(35)가 한국전력으로 깜짝 이적했다. 프로 15년차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박철우는 한전에서 어린 선수단의 중심을 잡으며 마지막 불꽃을 태울 전망이다. 한전 관계자는 19일 “지난 17일 계약을 완료했다”며 “박철우의 공격력이 팀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전은 2019-20시즌 최하위인 7위(승점 24점·6승 26패)에 머문 데다 몇 년간 중량급 선수 영입이 없어 비판을 받아왔다. 때문에 이번 FA 시장에서 투자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했다. 원래 센터진 보강을 우선순위로 삼았지만 여의치 않던 상황. 권영민 수석코치는 양 날개 공격력을 극대화한다면 속공 견제를 덜 받을 센터 포지션도 살아날 수 있단 의견을 냈다.

권 코치가 현대캐피탈 시절 함께 뛰었던 박철우는 공격력 보강에 적격인 선수였다. 원년인 2005년부터 V-리그에서 활약한 박철우는 총 5500득점을 돌파(5681득점)한 유일한 선수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도 박철우는 득점 7위(국내선수 2위·444득점)에 공격종합 6위(성공률 51.48%)를 차지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지난 1월 도쿄올림픽 예선전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위기 때마다 득점을 올리는 승부사의 면모를 보였다.

계약은 선수 본인이 놀랄 정도로 급속하게 이뤄졌다. 한전은 17일 오전 박철우에 영입 의사를 전한 뒤 오후에 바로 만나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전은 30대 중반인 박철우에게 3년 계약을 보장했고, 우리카드와 재계약한 지난 시즌 최우수선수(MVP) 나경복의 연봉(4억5000만원)보다도 높은 수준의 연봉(옵션 제외)을 제시했다. 한전의 역대 최고 수준의 조건이었다. 감독 거취 문제가 결정 나지 않아 삼성화재의 FA 계약이 미뤄지던 중 벌어진 일이었다.

공격하는 박철우(왼쪽). 한국배구연맹 제공

머뭇거리던 박철우를 움직인 건 장병철 감독의 영입 의지였다. 박철우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감독님께서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반복적해서 말씀해주셨고, 베테랑의 장점을 높이 평가해주셨다”며 “나이도 많은데 믿어주시고 3년 보장을 해주신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인인 신치용 진천선수촌장도 박철우에게 ‘선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곳에 가서 뛰는 게 프로’라며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고 한다. 결국 박철우는 현대캐피탈(2005∼2010년) 삼성화재(2010∼2020년)에 이어 세 번째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됐다.

갑작스런 이적에 주변도 발칵 뒤집혔단 후문이다. 박철우는 “한선수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와 ‘한전도 더 강해지겠다’며 좋은 말들을 해줬고, 김학민 문성민 신영석 등 많은 동료들이 축하해줬다”며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10년 동안 함께했던 지태환 고준용 선수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아쉽지만 축하한다고 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삼성화재와의 10년은 박철우에게도 특별했다. 우승후보였던 친정팀 현대캐피탈을 누르고 통합우승을 차지한 2013-14시즌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박철우는 “은퇴 선수도 많았고 여오현 선수도 팀을 떠난 상황에서 아가메즈를 앞세운 현대캐피탈의 전력이 좋아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던 시즌이었는데 힘겹게 우승을 일궈내 소름끼칠 정도로 좋았다”며 “장인어른과 함께한 마지막 우승이기도 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런 만큼 팀을 옮기는 결정이 쉽진 않았다고 한다. 박철우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팬, 팀원들, 코칭스태프분들께 미안하고 뒤숭숭한 마음이 크다”며 “특히 아내는 장인어른이 20년, 저도 10년이나 함께한 삼성에 애정이 저 이상으로 강한데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에 3일째 울고 있다”고 전했다.

서브하는 박철우.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전은 박철우와 함께 공격력이 뛰어난 외국인 용병을 영입해 좌우 공격력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최근 영입된 이시몬은 김인혁과 함께 남은 레프트 한 자리에서 수비를 공고히 한다. 장 감독은 “리빌딩 중 실력 있는 고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큰 결심을 해줘서 고맙고, 외인까지 오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철우도 “나이든 선수가 아니라 동료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같은 왼손잡이 라이트인 이태호에 대해선 “어렸을 때 저처럼 타점도 좋고 키도 커 경험이 쌓이면 더 좋아질 선수”라며 “라이벌 의식 느끼면서 경쟁한다면 함께 상승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