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한다. 그간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다는 각계각층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마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는 20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연다고 19일 밝혔다. 양형위는 법관들이 재판에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양형기준을 설정하고, 이와 관련한 양형정책을 연구·심의하는 대법원 산하 독립 국가기관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양형위는 청소년보호법 제11조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범죄의 형량범위,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카메라 등 이용촬영,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등 소위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기준도 검토할 계획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590개의 음란물을 판매한 n번방 운영자 ‘켈리’ 신모(32)씨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 안팎에선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양형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에는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13일 김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수성이 반영된 성범죄 양형기준을 시급히 설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장인 백혜련 의원 등도 지난 17일 대법원을 찾아 “양형기준을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과 김영미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감경 사유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국민의견 분석보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양형위는 지난달 1심 판사들을 대상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의 적절한 양형 범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양형기준 마련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형기준의 초안을 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이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양형기준 설정은 위원회가 기준안을 마련하면 공청회 및 국회 등 관계기관에 대한 의견 조회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확정된 양형기준은 이르면 6월쯤 공개 될 것으로 보인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