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이재규 감독…영화인 ‘넷플릭스 러시’하는 이유

입력 2020-04-19 13:51 수정 2020-04-19 15:36
'지금 우리 학교는'. 네이버웹툰 제공


한국 충무로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과 배우들의 넷플릭스 진출이 급격히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픈 넷플릭스와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원하는 영화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세계 190여개국 1억6700만개 멤버십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한국에 상륙한 이후 국내 유수의 창작진들과 협업해 다양한 오리지널 시리즈들을 선보여왔다. 넷플릭스는 이전에도 다른 나라에 진출해 이런 방식으로 현지 콘텐츠 시장 입지를 빠르게 넓혔었다. 유명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나르코스’ 등 현재까지 넷플릭스가 만든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만 수백 편에 달한다.

한국 영화계 제작진과 배우들이 넷플릭스와 협업한 작품들도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재규 감독은 차기작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선보인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동명 웹툰을 다듬은 작품으로, 오는 6~7월 촬영에 들어간다. 이 감독은 ‘베토벤 바이러스’ ‘다모’ 등 인기드라마 연출PD 출신이기도 해 밀도 있는 작품을 기대케 한다.

배우 정우성은 ‘고요의 바다’를 통해 제작자로 변신했다. 고요의 바다는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달로 향하는 대원들의 얘기를 그린 SF 스릴러다. 배두나가 주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동명 단편으로 2014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최항용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정우성은 지난 2월 크랭크인한 영화 ‘보호자’를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한 바 있다.

좀비 영화 ‘부산행’으로 한국형 좀비물의 신기원을 연 연상호 감독도 ‘지옥’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도전한다. 지옥은 연 감독이 글을 쓰고, 한국의 노동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린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연 감독이 즐겨 쓰는 초자연적 현상에 관한 이야기로, 유아인 박정민 원진아 등이 주연 물망에 올랐다. 이밖에도 영화 ‘도가니’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의 ‘보건교사 안은영’,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김성호 감독의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도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출 신호탄은 2017년 봉준호 감독과 손잡고 선보인 영화 ‘옥자’였다. 이후로 만화가 천계영의 ‘좋아하면 울리는’을 비롯해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페르소나’ 등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김은희 작가의 좀비물 ‘킹덤’이 세계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국내 창작진과의 협업도 급물살을 타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정유미. 연합뉴스


영화인에게 넷플릭스 진출은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국내 유수의 제작진들은 넷플릭스와의 작업을 선호하는 배경으로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꼽는다. 먼저 넷플릭스는 국내 방송과 달리 상대적으로 심의나 규제가 자유로운 편이다. 지난해 킹덤 시즌1 발표 당시 김 작가는 넷플릭스와 작업한 계기를 “역병과 좀비가 나오는 사극은 공중파 드라마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오후 10시, 11시 방송이라도 표현의 제한이 많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초국적 콘텐츠·플랫폼 기업인 넷플릭스의 막대한 자본력도 무시할 수 없다. 넷플릭스와 여러 차례 작업한 한 제작사 PD는 “작품을 선정하기까지는 까다롭지만, 일단 정해지고 나면 과감하게 밀어준다”고 전했다. 영화 특성상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긴 호흡으로 풀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를 송출하는 해외 극장 역할도 하는 넷플릭스는 창작자나 배우로선 자신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리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구인 셈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급감한 상황에서 VOD(주문형 비디오)보다 매력적인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마케팅 비용 등의 소진으로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로 곧장 진출해 해외 세일즈사와 법적 분쟁을 빚은 영화 ‘사냥의 시간’은 해외 세일즈사와의 극적인 합의 이후 넷플릭스 공개 일정을 타진 중이다.

그러나 콘텐츠 시장 일각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진출로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의 자생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넷플릭스를 통한 해외 진출은 한류 진출이 아니라 넷플릭스의 진출일 뿐”이라며 “해외 자본 종속이 심화할 경우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자본의 하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