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집단사망은 인재였다”…이탈리아 ‘비통의 진상조사’ 착수

입력 2020-04-17 15:40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한 창고에 줄지어 늘어선 관.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려 2만2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이탈리아에서 당국과 의료 시설의 과실 유무를 따지는 수사가 본격화됐다. 코로나19는 자연 재해였지만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 사망은 인재(人災)였다는 비통함이 멈췄던 이탈리아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검경이 코로나19 사태에서 ‘죽음의 도시’로 불린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에 위치한 병원과 요양시설, 지방 정부를 대상으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회복 중인 코로나19 환자를 요양원으로 이송하라는 롬바르디아 주정부의 방침이 요양원 집단 감염 사태를 유발해 결과적으로 방역 실패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경찰도 롬바르디아 주정부 사무실과 밀라노 등지의 몇몇 양로원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에서도 롬바르디아주는 1만1000여명의 사망자가 나오며 피해가 집중된 지역이다. 쏟아지는 사망자에 베르가모의 한 지역 신문이 지난달 중순 평소 1~3개 면에 불과하던 부고면을 10개 면으로 늘리는 일도 있었다. 베르가모에서는 지난달 약 5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평년 같은 기간의 5배가 넘는 수치였다.

지난 2월 말부터 확진자가 급격히 늘며 유럽 대륙의 코로나19 진앙지가 됐던 이탈리아는 이번 달 들어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세가 서서히 약해지면서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악의 보건 위기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이자마자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WSJ는 “수많은 희생자의 친척과 친구들은 그들의 죽음이 피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며 “슬픔이 분노로 변하면서 그들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지 알아내고자 한다”고 전했다. 검경의 수사 착수도 이 같은 분노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이탈리아 전국의사협회는 지난주 롬바르디아주의 비극이 ‘의료진을 보호할 의료장비 부족’ ‘충분치 못했던 감염자 진단검사’ ‘바이러스가 퍼진 지역에 대한 초기 봉쇄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당국의 대응 실패를 지적한 것이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베르가모의 발레 세리아나 지역 38개 마을 연합회장인 지암피에로 칼레가리는 WSJ에 “주민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슬퍼하는 단계를 넘어서 이제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 마을 한 곳에서는 주민 1만1000명 중 약 1.3%가 사망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치명률을 보였다. 검찰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 지역 병원이 지방 정부 지시에 따라 일시 폐쇄 조치를 취했다가 재개방하자마자 급격히 바이러스가 확산했다고 보고, 재개방 지시가 내려진 배경을 수사하고 있다.

칼레가리는 “우리에겐 희생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