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때 수사관이 영장의 겉표지만 보여주고 범죄사실 등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적법한 압수수색으로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이 경우 압수물도 위법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통해 국민 권리보호 강화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김모씨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위법했다”며 제기한 준항고 기각 결정의 재항고 사건에서 준항고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 부천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준항고는 수사기관의 처분에 대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불복 신청이다. 김씨는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는데, 이때 영장 내용 확인을 요청했지만 수사관은 겉표지만 제시했다.
김씨는 겉표지 뒤의 범죄사실은 볼 수 없었다. 그는 압수 처분이 위법했고 압수된 물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천지법 부천지원에 준항고를 제기했다. 이 주장은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후 김씨의 변호인이 조사에 참여하면서 영장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감안됐던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기각 결정에 불복,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사건을 다시 살핀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수사관이 영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 그 내용을 확인시켜 주지 않은 것은 영장의 적법한 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적법한 영장의 제시’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김씨에 대한 압수 처분은 위법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적법한 영장의 제시 범위 및 방법에 관한 종전의 판례를 구체적으로 재확인한 사실상 최초의 선례”라며 “국민에게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