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처분, 거액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는 바이오 업체 ‘신라젠’의 전직 임원 2명이 구속됐다. 총선 국면에서 ‘숨고르기’였던 서울남부지검의 주요 금융범죄 수사들은 다시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성보기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7일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이용한(56) 전 신라젠 대표이사와 곽병학(56) 전 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서정식)은 둘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었다. 이씨 등 주요 피의자가 구속된 것은 검찰이 신라젠 수사에 착수한 지 8개월여 만이다.
이 전 대표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신라젠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곽 전 감사는 2012~2016년 감사와 사내이사를 맡았다. 곽 전 감사의 경우 문은상(55) 현 신라젠 대표이사와 친인척 관계이기도 하다.
이들은 신라젠이 개발하던 항암치료제 ‘펙사벡’의 임상 중단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주식을 처분, 주가 폭락에 따른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6년 12월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진입한 신라젠은 펙사펙 개발 기대감과 함께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급등,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상장 당시 주가는 1만원대였지만, 2017년 11월 “펙사벡이 신장암에 반응을 보였다”는 신라젠 연구소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주가는 13만원대까지 치솟았다. 당시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9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신라젠은 지난해 8월 임상 중단 결과가 알려지며 주가가 폭락했다. 금융권은 신라젠 임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거둔 시세차익이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곽 전 감사와 문 대표 등은 상장 이후 펙사벡 임상 중단 공시가 이뤄지기 전까지 2515억원(292만765주)어치의 지분을 매도했다.
이 전 대표와 곽 전 감사는 지난 1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신라젠 측은 과거의 범행이라며 선을 그었다. 신라젠 관계자는 “이 전 대표이사와 곽 전 감사 모두 2016년 신라젠이 상장되기 전에 회사를 나간 사람”이라며 “당시의 신라젠과 지금의 신라젠은 완전히 다르고, 그들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신라젠이 기술특례상장될 수 있었던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는 태도다. 부정한 자금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흘러갔을 의혹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 등의 신병을 확보한 것도 범행 전모를 밝히기 위한 포석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2월 신라젠과 라임자산운용 사태 관련 수사들을 총괄하는 송삼현 서울남부지검장을 따로 불러 “정확한 진상을 규명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시했었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폐지 이후에도 서민 다수의 피해를 낳는 금융범죄 수사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서울남부지검 수사팀은 차차 보강돼 왔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