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일주일 넘게 3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집단 감염 사례가 터져나왔는데, 그때에 비하면 확실한 감소세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에 마냥 안도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누구 하나 먼저 마음을 놓을 수 없지요. 환자들을 돌보는 코로나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4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간호사들 앞으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작은 손편지부터 시작해 피로회복제와 간식, 각종 생필품이 담겨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은 듯한 정성을 대표로 전달받은 건 지난달 16일부터 이곳에서 의료지원 중인 김현아 간호사였습니다.
김 간호사는 ‘메르스 전사’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나라를 삼켰던 그때, 그는 코호트 격리된 경기도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봤습니다.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던 건 김 간호사가 쓴 한 통의 편지였습니다. 거기에는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끝까지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내용이 쓰였죠. 그랬던 그가 다시 감염병 현장으로 돌아온 겁니다.
선물 꾸러미 사이에는 김 간호사의 사진이 박힌 대형 액자가 있었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냥 평범한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쓰인 팻말을 똑같이 손에 든 수천명의 사람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나열돼 있었고, 그들의 얼굴이 모여 김 간호사의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에는 이날 전해진 모든 선물의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선물을 직접 들고 김 간호사를 찾아간 오성훈(27) 널스노트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간호사였던 오 대표는 병원을 나와 간호인들의 고충을 웹툰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업무와 적응을 돕는 회사를 창업해 ‘간호사를 간호하는 간호사’로도 활동하고 있죠. 그 역시 얼마 전까지 코로나 현장을 누비며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던 청도대남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냈고 안동의료원에서 2주 더 뛰었습니다. 21일간의 의료지원, 14일간의 자가격리를 모두 끝낸 뒤 3주 만에 코로나 병동을 다시 찾은 이유는 뭘까요?
오 대표는 17일 국민일보에 “간호사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했다는 약속은 이렇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부딪혀보니 코로나 병동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했다는 그는 SNS상에서 ‘#간호사응원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환자분들을 위해 일하는 간호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기를 전했습니다.
참여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그저 하얀 종이에 ‘#NURWAYS_WITH_YOU 코로나 최전선에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간호사를 응원해주세요’라고 쓴 뒤 사진을 찍어 SNS에 게시하고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식이었습니다. 오 대표는 1명이 참여할 때마다 500원씩 후원금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3일 만에 200개가 넘는 사진이 쏟아지더니 한 달이 지나자 2000여명이 모였습니다. 모두에게 익숙한 얼굴, 배우 김태희씨도 응원을 더 했다고 합니다. 간호사 용품 쇼핑몰 ‘너스키니’와 권단비 간호사의 개인 후원도 이어졌습니다.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 지난달 31일 기준 200만원 정도의 후원금액이 만들어졌고 오 대표는 이를 가지고 대구동산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오 대표는 “간호사와 간호학생은 물론 아이들과 의료계 종사자, 유튜버, 회사원, 어린이집 교사 등 전 국민이 참여해 주셨다”며 “감동받았다는 말과 함께 후원금을 더해준 분들도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료지원 현장에는 아직도 많은 의료진이 땀 흘리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는 그날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듯, 코로나19로 휘청였지만 우리 모두 의료진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캠페인으로 국민 모두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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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