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3주 만에 코로나 병동을 다시 찾았습니다”

입력 2020-04-17 06:28 수정 2020-04-17 10:25
캠페인 참여자들의 사진으로 모자이크 된 김현아 간호사의 사진. 오 대표 제공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일주일 넘게 3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집단 감염 사례가 터져나왔는데, 그때에 비하면 확실한 감소세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에 마냥 안도할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누구 하나 먼저 마음을 놓을 수 없지요. 환자들을 돌보는 코로나 병동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4일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간호사들 앞으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작은 손편지부터 시작해 피로회복제와 간식, 각종 생필품이 담겨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은 듯한 정성을 대표로 전달받은 건 지난달 16일부터 이곳에서 의료지원 중인 김현아 간호사였습니다.

김 간호사는 ‘메르스 전사’로 이미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나라를 삼켰던 그때, 그는 코호트 격리된 경기도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봤습니다. 국민에게 감동을 안겼던 건 김 간호사가 쓴 한 통의 편지였습니다. 거기에는 “메르스가 내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끝까지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내용이 쓰였죠. 그랬던 그가 다시 감염병 현장으로 돌아온 겁니다.

대구동산병원 코로나병동 간호사들에게 전달된 선물. 오 대표 제공

선물 꾸러미 사이에는 김 간호사의 사진이 박힌 대형 액자가 있었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냥 평범한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쓰인 팻말을 똑같이 손에 든 수천명의 사람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나열돼 있었고, 그들의 얼굴이 모여 김 간호사의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기에는 이날 전해진 모든 선물의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선물을 직접 들고 김 간호사를 찾아간 오성훈(27) 널스노트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간호사였던 오 대표는 병원을 나와 간호인들의 고충을 웹툰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업무와 적응을 돕는 회사를 창업해 ‘간호사를 간호하는 간호사’로도 활동하고 있죠. 그 역시 얼마 전까지 코로나 현장을 누비며 의료 봉사를 했습니다.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던 청도대남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냈고 안동의료원에서 2주 더 뛰었습니다. 21일간의 의료지원, 14일간의 자가격리를 모두 끝낸 뒤 3주 만에 코로나 병동을 다시 찾은 이유는 뭘까요?

코로나 병동 간호사들에게 전달할 선물 포장하는 후원자들. 오 대표 제공

대구동산병원에 후원물품 전달한 오 대표(가운데). 오 대표 제공

오 대표 제공

오 대표는 17일 국민일보에 “간호사분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했다는 약속은 이렇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부딪혀보니 코로나 병동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했다는 그는 SNS상에서 ‘#간호사응원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환자분들을 위해 일하는 간호사들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기를 전했습니다.

참여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그저 하얀 종이에 ‘#NURWAYS_WITH_YOU 코로나 최전선에서 우리와 항상 함께하는 간호사를 응원해주세요’라고 쓴 뒤 사진을 찍어 SNS에 게시하고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식이었습니다. 오 대표는 1명이 참여할 때마다 500원씩 후원금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캡처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 인스타그램 캡처

김태희 인스타그램 캡처

작은 시작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3일 만에 200개가 넘는 사진이 쏟아지더니 한 달이 지나자 2000여명이 모였습니다. 모두에게 익숙한 얼굴, 배우 김태희씨도 응원을 더 했다고 합니다. 간호사 용품 쇼핑몰 ‘너스키니’와 권단비 간호사의 개인 후원도 이어졌습니다.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 지난달 31일 기준 200만원 정도의 후원금액이 만들어졌고 오 대표는 이를 가지고 대구동산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오 대표는 “간호사와 간호학생은 물론 아이들과 의료계 종사자, 유튜버, 회사원, 어린이집 교사 등 전 국민이 참여해 주셨다”며 “감동받았다는 말과 함께 후원금을 더해준 분들도 계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료지원 현장에는 아직도 많은 의료진이 땀 흘리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는 그날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듯, 코로나19로 휘청였지만 우리 모두 의료진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캠페인으로 국민 모두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길 바랍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