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3일 개막하는 영국국립극장(NT)의 ‘워호스(War Horse: 군마)’ 내한공연은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소설을 무대화 한 이 작품은 NT에서 2007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11개국 97개 도시에서 8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최근 ‘워호스’ 내한공연의 티켓 예매가 시작됐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선 ‘워호스’가 티켓예매 사이트에서 뮤지컬로 분류돼 있다. ‘워호스’가 노래 등 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뮤지컬 장르라고 보긴 어렵다. ‘워호스’를 제작한 NT도 연극이라고 확실히 표기하고 있고,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공연 되는 동안 현지 티켓예매 사이트인 티켓마스터(ticketmaster) 등에서도 연극으로 분류됐다. 물론 미국, 독일, 일본 등 해외에서도 공연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 공연됐을 때는 ‘음악극(spectacle musical)’로 소개됐는데, 역시 뮤지컬이 아니라 음악이 많이 포함된 연극이라는 의미였다.
NT가 2009년부터 자체 제작 연극을 전 세계에 실시간 또는 지연 중계하는 프로그램인 ‘NT 라이브’ 일환으로 ‘워호스’가 국내에 소개됐을 때도 연극으로 관객과 만났다. NT 라이브를 국내에 소개해온 국립극장은 그동안 ‘워호스’를 세 차례 선보였을 때 모두 연극으로 소개했다. 당시 인터파크 등 국내 티켓예매 사이트에서도 연극으로 팔렸다. 이번에 장르가 바뀐 것은 제작사가 티켓예매 사이트에 작품을 뮤지컬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워호스’ 기획사인 쇼노트 관계자는 “장르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연들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작품의 음악적인 강점을 강조하기 위해 뮤지컬로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티켓예매 사이트에 작품을 등록할 때 장르 구분은 온전히 기획사의 결정에 달렸다. 그래서 적지 않은 작품이 실제 장르와 다르게 등록되기도 하는데, 대부분 뮤지컬로 등록된다. 그동안 몇 차례 이뤄진 태양의 서커스 내한공연 등 서커스나 이은결 등 국내외 스타 마술사의 마술 공연은 뮤지컬 장르로 티켓이 팔렸다. 서커스와 마술은 국내 티켓예매 사이트에 따로 장르가 없기 때문에 뮤지컬에 포함시켰다 쳐도, 무용이 분명한데도 무용 대신 뮤지컬에 넣기도 한다. 국내에서 여러 차례 내한공연을 가진 ‘번더플로어’가 대표적이다. ‘번더플로어’는 다양한 사교댄스를 갈라 형식으로 보여주는 무용 공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댄스뮤지컬’이란 타이틀 아래 뮤지컬 장르로 티켓이 판매됐다.
‘댄스뮤지컬’이라는 용어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와 수잔 스트로만의 ‘컨택트’가 각각 1998년과 1999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면서 만들어졌다. 사실 본의 ‘백조의 호수’는 앞서 영국에서 공연됐을 땐 ‘무용극’으로 소개됐다. 뮤지컬 장르에 대한 논쟁 끝에 본과 스트로만 이후 춤을 전면에 내세운 ‘댄스뮤지컬’이란 용어가 나왔지만 브로드웨이서 빈번하게 사용되진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2003년 LG아트센터가 본의 ‘백조의 호수’를 처음 선보일 때 ‘댄스뮤지컬’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후 일반화됐다. 이후 무용 공연에 댄스뮤지컬 타이틀을 붙여 티켓사이트에서 뮤지컬로 파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국내 티켓 예매사이트의 장르 구분이 세분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뮤지컬이 다른 장르에 비해 압도적으로 인기있는 데서 기인한다. 한국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해 뮤지컬 분야 매출은 1663억원으로, 연극·클래식·오페라·무용·국악 등을 포함한 전체 공연계 수익의 72.4%를 차지했다. 즉 팬층이 얇은 연극이나 무용보다는 뮤지컬로 홍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티켓 구매 고객이 자주 오가는 뮤지컬 장르에 포함돼 있을수록 노출 빈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연극의 경우엔 편수가 워낙 많다보니 차별화 되기도 어렵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해외 작품뿐 아니라 국내 소극장이나 지방에서 선보이는 공연 중에도 마케팅 측면에서 뮤지컬을 표방한 연극 작품들이 꽤 있다”며 “관객과의 신뢰를 생각한다면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 티켓예매 사이트에서 국악 등 전통공연은 클래식/무용 장르 안에 포함돼 있다. 창극이나 마당놀이의 경우 그동안 연극, 뮤지컬, 국악(콘서트) 등으로 뒤섞여 팔렸었다. 다만 안호상 전 극장장 시절 전속극단 활성화에 성과를 보인 국립극장은 국립창극단과 자체 마당놀이의 공연을 연극으로 분류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뮤지컬과 연극을 놓고 장르 구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연극으로 분류하는게 맞다고 봤다”고 밝혔다. 다만 지역 극장의 초청으로 공연이 이뤄질 때는 초청자 측에서 장르를 구분하다 보니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이나 콘서트로 티켓이 팔리기도 한다.
공연 장르를 바꾸는 현상이 반복되는 문제와 함께 현행 티켓 예매사이트의 공연 분류가 향후 공연계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은경 평론가는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융복합극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인데, 장르를 뭉뚱그려놓고 관객에게 일일이 따져 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창작 주체들과 티켓예매 사이트가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