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38·텍사스 레인저스)·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봄에 만날 수 있을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논의되는 ‘애리조나 플랜’으로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애리조나 플랜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미국 서남부 내륙에 있는 애리조나주로 집결해 무관중으로 정규리그를 시작하는 방안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개막을 앞당길 최선책으로 제시돼 있다.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간판’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애리조나 플랜을 지지하면서 메이저리그 개막 논의는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 NBC스포츠는 16일(한국시간) “파우치 소장이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으로 서비스되는 뉴스쇼 ‘굿 럭 아메리카’에 출연해 프로스포츠를 다시 시작할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파우치 소장은 프로 리그의 개막, 혹은 재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방법이 있다”며 “어느 관중도 경기장에 방문하지 않고, 선수들이 큰 호텔에서 숙박하며 매주 검사를 받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주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개최 불허 방침보다 상대적으로 완화된 입장을 밝힌 셈이다.
파우치 소장은 메이저리그를 특별히 언급하며 “나는 워싱턴 DC에서 거주하고 있다. 월드시리즈 챔피언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개막의 대안으로 “거품(Bubble) 속으로 들어가라”는 제안도 했다. 파우치 소장이 말한 ‘거품’은 애리조나 플랜을 가리킨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30개 구단 안팎에서 애리조나 플랜의 성사로 시작될 정규리그는 ‘애리조나 버블리그(Arizona Bubble League)’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파우치 소장의 발언은 애리조나 플랜에 대한 지지로 해석된다.
애리조나주는 야구 종주국 미국 안에서도 좋은 인프라를 갖춘 곳으로 통한다. 주도 피닉스시를 중심으로 반경 80㎞ 안에 있는 경기장만 11곳이다. 그 주변 호텔 8곳은 425개 이상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대학 야구장까지 활용하면 매일 15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파우치 소장은 1984년부터 모두 6명의 대통령 밑에서 미국 내 방역 정책을 진두지휘해 왔다. 미국에서 감염병 전문가로 명망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우치 소장에게 사실상 전권을 주고 백악관 코로나19 TF를 가동하고 있다. 미국 내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비관론을 펼치면서 소신 발언도 마다않는 파우치 소장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트위터에 ‘파우치를 해고할 때(Time to #FireFauci)’라고 적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파우치 소장을 해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무관중으로나마 경기장 개방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파우치 소장의 발언은 작지 않은 파급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애리조나 플랜 논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수장인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이날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사무국의 의무”라며 “2020시즌 정규리그 개막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리조나 플랜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메이저리그의 여러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에서 토론토로 이적한 류현진, 세인트로이스로 입단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김광현에게 불확실성 해소는 더 절박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당초 지난달 27로 예정된 개막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에 따라 5월 중순 이후로 연기했다. 일각에서 독립기념일(현지시간 7월 4일) 개막론이 거론되고 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아직 개막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다. 애리조나 플랜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5월 중순 이후 개막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애리조나 플랜은 일부 선수들의 반발도 사고 있다. 애리조나주 지형의 상당수는 사막이다. 사막지대에 고립돼 수개월간 경기장과 호텔만 오가야 할 선수의 입장에서 애리조나 플랜은 마냥 반가울 수 없다. LA 에인절스 강타자 마이크 트라웃은 “가능하면 빠르게 (경기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호텔 객실에서만 지낼 수 없다.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