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도 유권자의 표심을 막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의 선거를 치르며 방역 시험대에 올랐다. 오전 9시 기준 투표율도 지난 20대 총선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시대에 펼쳐지는 사상 초유의 ‘방역 선거’는 선거를 연기했거나 앞둔 세계 각국에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다.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격리에서 생활방역으로 넘어가도 좋을지 판단하는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5일 실시되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코로나19에 대비한 방역수칙 하에 치러진다.
▲마스크를 착용할 것 ▲발열검사를 받고 손소독제를 쓴 후 나눠준 일회용 비닐장갑을 착용할 것 ▲어린 자녀를 동반하지 말 것 ▲다른 선거인과 1m 이상 거리를 둘 것 ▲상호 대화를 자제할 것 등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유권자 행동수칙이 생긴 선거다.
까다로운 방역 조건에도 불구하고 21대 총선 투표율은 오전 9시 현재 8.0%를 기록, 지난 총선보다 0.9%p 높은 수치를 보였다.
코로나19 환자와 접촉했거나 해외에서 입국해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 유권자에게도 참정권 보장 차원에서 100분의 외출을 허용한다.
반면 세계 많은 나라들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연기했다.
미국은 15개 이상의 주(州)가 대선 주자 경선을 연기하고, 영국은 지방선거를 1년 미뤘으며, 프랑스는 지방선거 2차 투표를 6월로 연기한만큼 한국의 이번 방역선거에 주목하고 있다.
선거가 무난하게 진행되고 투표를 위한 대규모 외출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투표 절차는 코로나19 시대의 투표 모델이 될 수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13일(현지시간) “조만간 선거를 치를 미국과 홍콩,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의 실험적 투표를 따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선거는 사람 간 접촉을 가급적 제한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일상생활과 방역이 병행되는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는 갈림길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방역상의 성적표가 매우 중요하다.
고강도 거리두기 이후 신규 확진자가 확 줄었고, 최근 일일 확진자가 20∼30명선으로 유지되면서 생활방역으로 전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정부가 생활방역 기본조건으로 제시한 ‘일일 확진자 50명 미만 유지’ ‘감염경로 미확인 환자 비율 5% 미만’이라는 조건은 이미 갖춰졌다.
이는 중국과 미국, 상당수 유럽국이 단행한 고강도 봉쇄·폐쇄 조치없이 이뤄낸 성과로, 총선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방역당국은 전날 브리핑에서 “강력한 봉쇄 없이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대책, 감염병 예방수칙으로 사회를 안전하고 질서있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시험대에 올랐다”고 밝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번 총선을 “코로나19를 보다 확실히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고비”라면서 “국민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노력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