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는 12만명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 전 인류가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예방 백신과 전문 치료제의 개발이다.
특히 건강한 사람에게 사용해 감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백신 개발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각국 정부와 연구소,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백신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정부는 오는 7월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하고 코로나19를 비롯한 주요 감염병의 백신 후보물질 발굴부터 사람 대상 임상시험 연계까지 전주기 연구개발 지원 계획을 밝혔다.
최근 사업단 초대 단장에 성백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가 선임됐다. 서울대 약대 출신인 성 단장은 30여년간 바이러스와 백신 연구에 천착해 온 과학자다.
성 단장을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2공학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첫 일성으로 “코로나19가 백신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중책을 맡았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 감염성 질환 관련 백신 개발은 깨끗한 물 다음으로 투자 비용 대비 보건 효과가 높은 방법이다. 백신은 수십년 동안 다양한 질병의 종식 또는 관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수 년간 정부 차원에서 감염병 예방 관련 투자 방안을 고심한 끝에 올해 사업단을 출범하게 됐다.”
-어떤 일을 하나.
“백신의 국산화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백신은 28종이다. 이 중 자체 생산 가능한 백신은 10여종에 불과해 자급능력이 40% 미만이다. 사업이 완료되는 10년 후 자급률을 80%로 끌어올릴 것이다.
국가필수예방접종 백신 3종, 미래 대응형 백신 5종을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연구 2단계(임상2상 완료)까지로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는 8종의 목표 백신에 없었는데, 시급성을 감안해 예산을 우선 책정해 개발을 지원할 것이다.”
-2029년까지 10년간 2151억원이 투입되는 큰 프로젝트인데.
“국고 외에 민간 매칭까지 포함하면 실제 예산은 2500억원으로 감염병 대응 국가사업으론 최대 규모다. 백신 자체의 개발이 목표이지만 국제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에 걸맞는 생산시설 구축도 필요하다.
최근 5년간 1900억원을 들여 백신실용화기반구축사업이 진행됐으며 경북 안동과 전남 화순에 2개의 생산시설이 올해 말~내년 초 완공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가 왜 공포와 불안을 키운다고 보나.
“코로나19는 기존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달리 ‘무증상 감염’이 두드러진다. 전파력도 있다. 일종의 시한폭탄과 같다. 효과적인 백신의 부재로 확산을 막을 도구마저 없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이 언제까지 갈까.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이번 코로나19까지 지난 20년간 3번의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있었다. 유행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확산 속도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자면 코로나19가 상시 유행하는 계절병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토착화된 독감(인플루엔자)과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변종이 훨씬 더 많은 인플루엔자가 겨울에 왕좌 자리를 내어주진 않을 것이다. 다른 계절, 예를들어 봄이나 가을에 코로나가 찾아와 독감과 서로 사이클을 이루며 상시화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예측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발원지였던 중국에선 벌써 종식 얘기가 나온다.
“사스나 메르스처럼 코로나19도 언젠가 종식이 되리라 본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는 모습을 바꿔 계속 출현할 것이다. 유행 주기로 봐서 2~3년 내에 ‘코로나X(예를들어 코로나21 혹은 코로나22)’가 등장해 또 다시 팬데믹을 부를 수 있다.
코로나는 RNA유전자를 갖고 있어 복제과정에 돌연변이가 잦고 백신을 회피하는 새로운 변종 발생 확률이 높다. 움직이는 화살을 쏘아 맞추기 어렵듯,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식은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변종 코로나에 대응하는 백신을 상시적으로 개발해 전지구적으로 접종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국내외 코로나19백신 개발 동향은.
“전세계적으로 5건의 사람 대상 임상시험이 진행중이거나 계획돼 있다. 3건은 미국과 중국에서 이미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다양한 백신 플랫폼이 개발되고 있다. DNA나 RNA 같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체에 직접 넣어 항원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게 하고 그에 대응하는 항체가 생기도록 하는 방식이 가장 앞서 있다. 이밖에 60여건의 임상 전 연구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해외에 비해 다소 더디지만 2개 기업이 개발한 DNA백신이 5월 초에 영장류 실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전자가 400억기금을 투입해 메르스DNA백신을 개발했지만 효능이 입증되지 않아 임상초기에 중단됐다. 코로나19백신이 메르스 백신의 재판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전통적 방식의 단백질항원형 백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국내의 경우 아직 임상시험 진입 사례는 없다.”
-백신 개발 얼마나 걸릴까.
“1~1년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란 낙관적 견해가 있는 반면 10년 넘게 걸릴 것이란 전통적 의견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효용도를 감안해 개발 완료라는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1회 접종으로 10~20% 정도 낮은 방어 효능이라도 긴급용으로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추가 접종을 통해 효능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냐. 이는 백신 사용 당시 상황(바이러스 확산 속도, 진정 상태, 국제적 합의 등)에 따라 각 국가가 정책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백신은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접종 후 부작용 등 안전성 이슈가 훨씬 부각되며 까다로운 인·허가 기준으로 인해 통상 개발기간이 치료제 보다 더 걸린다.”
-범용 코로나백신 개발 필요성은.
“매년 변종이 발생하는 독감의 경우 해마다 그에 대응한 새 백신을 만들고 있다. 이런 종래 기술을 탈피해 이제는 다양한 변이 및 팬데믹 바이러스까지 모두 방어하는 ‘범용백신(또는 만능형백신)’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범용 효과는 유전자형 백신이나 단백질항원형 백신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킨 ‘약독화 생백신’ 형태의 경우 부분적으로 기대 가능하다. 범용 독감백신은 이미 개발돼 일부는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이런 범용백신 개발이 코로나19에도 적용돼야 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세계적 확산일로에서 3종의 변이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범용 코로나백신 개발이 향후 1~2년 내에 인류에 새로운 숙제를 안길 것이다. 물론 당장은 코로나19를 방어하는 백신 개발이 발등의 불이다. ”
-백신의 빠른 개발과 상용화 위한 제도적 지원책은.
“안전성이 이미 확보된 백신 개발 플랫폼 기술을 사용할 경우 독성시험 면제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기존 백신의 경우 1상, 2상, 3상임상시험을 단계별로 진행했으나 이를 동시 진행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이전에는 백신의 안전성 확보가 주요 이슈여서 오래 걸렸던 전통적 개발 혹은 인·허가 방식에서 벗어나 신속 개발, 긴급 사용을 통해 더 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제약사가 수익성 이유로 개발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 목적으로는 필요하나 상업성이 부족해 개발을 포기하거나 중단할 수 있음을 감안해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모든 연구개발비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입해 개발사의 비용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둘째, 개발된 백신을 국가가 직접 구매·비축하겠닥 보증함으로써 개발사가 비용 보상을 받게 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펀드에 정부 자금을 투입해 공공적으로 중요한 백신을 공동개발, 공동사용할 수 있도록 전략적 배려가 필요하다. 지난해 백신 개발을 목적으로 빌게이츠재단과 한국 정부, 5개 제약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500억원 규모의 국제기금인 ‘라이트 펀드(RIGHT FUND)’를 예로 들 수 있다. 정부는 이 기금을 1000억원으로 늘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긴급 사용할 방침이다.
3년 전 세계 10개국과 빌게이츠재단이 출자해 발족한 1조원 규모의 국제감염병혁신연합(CEPI)기금에 한국 정부의 공동 참여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개발된 백신에 대해 국내에서 사용 권리를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