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서울올림픽 당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주전 세터로 뛰었던 김경희(54)씨는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가 펼쳐질 때면 관중석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쌍둥이 딸 이재영(24)·이다영(24)이 서로 다른 팀에서 맞대결해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제 경기장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됐다. 이재영과 이다영이 흥국생명의 분홍색 유니폼을 함께 입고 프로 데뷔 6시즌 만에 한 팀에서 손발을 맞추게 돼서다.
흥국생명은 14일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와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흥국생명은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32·터키 엑자시바시)과 쌍포를 이루는 국내 최고 레프트 이재영에겐 총액 6억원(연봉 4억원·옵션 2억원)을, 세터 이다영에게는 총액 4억원(연봉 3억원·옵션 1억원) 규모의 3년 계약을 제시해 결국 국가대표 쌍둥이 듀오를 모두 품에 안았다.
전주 중산초, 경해여중, 선명여고를 거치며 학창 시절 내내 손발을 맞춘 쌍둥이 자매는 2014-2015시즌 프로에 진출하며 첫 이별을 겪었다. 이재영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된 반면 이다영은 1라운드 2순위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어서다.
둘은 이후 6시즌 동안 다른 팀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기량을 발전시켰다. 이재영은 2015-2016시즌부터 5회 연속 베스트7 레프트로 선정됐고, 이다영은 2017-2018시즌부터 3시즌 연속 베스트7 세터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매는 지난해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와 2202 도쿄올림픽 예선,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며 한국의 올림픽 진출을 이끌었고, 여자배구 최고의 인기 선수로 떠올랐다.
두 선수를 잡아 전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흥국생명은 다음 시즌 2년 만의 통합 우승에 도전할 전력을 갖추게 됐다. 두 선수는 따로 떼어서 봐도 장점이 확실하다. 이재영은 178㎝의 단신이지만 유연한 신체와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빠른 타이밍의 공격을 펼쳐 상대 블로커들을 손쉽게 따돌린다. 이다영은 빠른 풋워크를 활용한 반 박자 빠른 토스로 상대 수비를 교란한다.
더 무서운건 두 선수가 발휘할 시너지 효과다. 이다영의 빠른 토스는 이재영의 공격력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 배구의 세계적 추세인 ‘스피드 배구’를 구현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를 얻는 것이다. 국가대표 소집 당시에도 이다영이 “재영이와 호흡이 잘 맞아 토스 올리기 편하다”고 말하자, 이재영이 “다영이가 빠른 스피드로 토스해주면 공격력이 세진다”고 화답한 바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2020-2021 시즌 샐러리캡이 옵션캡 5억원을 포함해 23억원으로 오른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됐다. 기존엔 샐러리캡이 14억원 수준이라 합쳐서 ‘10억 몸값’인 두 선수를 모두 잡긴 사실상 불가능했다. 흥국생명은 “무엇보다 승부처에서의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 팀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동시에 필요했다”고 계약 이유를 밝혔다.
이다영은 “언니와 함께 뛰는 것도 내게 큰 의미지만 박미희 감독님의 리더십과 흥국생명만의 팀 분위기가 이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영도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단에 감사한다.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쌍둥이 외에도 ‘역대급’ FA 시장은 뜨겁게 불이 붙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FA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박정아(27)를 포함해 주축선수인 문정원(28) 전새얀(24)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다영 이적으로 흥국생명 FA 세터 조송화(27)는 IBK기업은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FA 선수들은 23일 오후 6시까지 자유롭게 모든 구단과 협상할 수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