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18):과부의 삶

입력 2020-04-14 10:35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일본 도시샤대학 최근 모습. 도시샤대학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아버지는 세상과 너무 일찍 이별하셨다. 시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어머니에게는 청천벽력과 다름없었다. 기댈 언덕이 사라진 셈이다.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두 자식과 함께 이시진 빈민가에 정착했다. 체구가 자그맣고 말수가 적었던 나는 늘 어머니 곁에 붙어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뜻밖의 결정을 하셨다.

“너는 앞으로 외삼촌 댁에 가서 살 거라. 이 어미가 나중에 꼭 너와 함께 살겠다.”

이 무렵 여동생 도쿠사는 도쿄의 한 집안의 양녀가 되어 나와 헤어져야 했다. 그 여동생은 지금도 도쿄에 살면서 한국의 사회복지법인 푸르메재단을 돕는 등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도쿠사는 2000년대 말 한국에서 벌어진 경기도 이천 오층석탑 반환 운동에 도움을 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생전에 “일제강점기 빼앗아온 한국 문화재는 제 나라로 돌려줘야 한다”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천 오층석탑은 도쿄 오쿠라호텔 뒤뜰에 있는 한국 탑으로 일제강점기 유출된 것이다. 도쿠사는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잘 아는 똑똑한 나의 여동생이다.

어머니는 곧바로 도시샤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셨다. 당시 여성이 4년제 대학을 간다는 것은 돈이 아주 많거나, 가문이 좋거나였다. 일본 역시 여성 인권이 형편없을 때여서 여성은 2년제 대학 정도 나와 시집 잘 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축복받은 삶이었다.

그런데 결혼까지 한 어머니가 대학에, 그것도 신학부에 들어가겠다고 하니 노무라가에선 뒤로 자빠질 일이었다. 그만큼 어머니는 신앙심이 좋았고 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에 타협하실 줄 몰랐다.

이시진은 한국의 청계천과도 같은 빈민촌이었다. 성경 말씀에 따라 살고자 했던 어머니는 이시진에서 가난한 일본인과 조선인의 혹독한 생활을 목격하셨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가난한 이시진이 신학교육의 첫걸음이 되는 장소가 됐다. 만약 내가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살았다면 무신론적 사회운동가가 됐을 텐데, 그러하지 않은 축복을 받은 것은 순전히 이시진의 민중과 조선인 때문이었다.

예수의 복음은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된 자들에게 주는 자유를 주는 힘이었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