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둔 부모 많았던 ‘조주빈’ 수사팀, “뿌리 뽑자” 공감대

입력 2020-04-14 10:17 수정 2020-04-14 11:23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3.25 연합뉴스

경찰 조사 중 자해 소동까지 벌였던 성착취 영상물 제작·유포범 조주빈(25·구속 기소)씨는 검찰에 와서는 별다른 사고 없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찌감치 ‘n번방’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한 검찰은 조씨 신상정보와 일부 수사 상황을 공개하면서도, 피의자 인권 침해는 없어야 한다는 자세로 조씨를 대했다. 검찰에서는 그의 변호인 접견권을 되도록 보장하라는 내부 지시가 이뤄졌고, 조씨는 조사 휴식 시간 등을 이용해 검찰청 내 민원실에서 10~20분씩 변호인을 수 차례 만날 수 있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수 여성의 성착취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한 조씨의 범죄는 공분을 살 일이었다. 경찰로부터 송치된 1만2000페이지의 사건 기록은 웬만한 이가 접하면 끝까지 읽기 힘들 정도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다만 여성아동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은 냉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씨의 악마와 같은 행적이 언론을 통해 먼저 드러났던 점도 충격을 덜어 줬다.

이런 조씨는 다른 디지털 성범죄자들과 달리 수사기관의 일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어떻게 추적을 하는지 아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보이스피싱, 마약사범 신고로 범인 검거를 도와 경찰로부터 감사장과 신고보상금을 5차례 받은 기막힌 이력이 있다. 조씨는 ‘마약 사기’를 저지른 뒤부터는 검거될까봐 불안했고,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었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검찰은 조씨가 본인이 아는 범위 내에서 안 잡히려 최선을 다 했다고 본다.

검찰은 조씨의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서울중앙지검에 4개 부서 합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 TF는 무관용 처벌 원칙을 내걸었다. 그러면서도 “개별적 범죄 행위를 처벌하는 데서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극악한 범죄가 생겨나는 토양 자체를 없애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범행의 전모를 밝히는 한편 사회적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검찰은 지난 13일 조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이례적으로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조씨와 공범들을 수사한 TF 구성원들 중에는 딸을 둔 부모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접근한 피해자에게서 ‘약점’을 잡은 뒤 협박의 수위를 높여 가는 신종 범행 수법은 수사기관의 노력만으로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TF에서는 “어떻게 우리 사회가 자녀들을 교육해야 할 것인지 유의사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청소년들도 거액을 내건 호의 이면의 악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소셜미디어(SNS)에 개인정보를 올리는 일을 지양하라는 검찰 당부는 이렇게 탄생했다.

조씨를 재판에 넘긴 뒤에도 검찰의 n번방 수사 업무는 ‘투트랙’으로 계속된다. 검찰은 ‘갓갓’ 검거와 관전자 처벌 등에 여념이 없는 경찰 수사를 계속 지휘한다. 검찰 스스로도 조씨의 범죄수익 배분 등 여러 여죄에 대해 보완 수사를 해야 한다. 조씨의 암호화폐 지갑을 여는 일도 남아 있다. 조씨는 기소되기 전날까지도 검찰의 포렌식 과정을 참관했다. 경찰로부터 송치될 나머지 사건 중에는 유명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기 사건도 포함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드러나는 범죄와 공범들에 대해서는 범위를 미리 재단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