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어디 있나요”… 한 달째 사라진 니카라과 대통령

입력 2020-04-13 18:11 수정 2020-04-13 18:38
니카라과 마나과 거리의 오르테가 대통령 부부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니카라과 대통령이 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벌써 한 달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대통령이 사라졌다. 니카라과는 코로나 팬데믹과 정면으로 맞서길 거부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대통령을 향한 니카라과 국민들의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니엘 오르테가(74) 니카라과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달 12일이었다. 당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중미 지도자 간의 화상회의 후 그는 돌연 증발했다. 정치적 동지인 하신토 수아레스 의원의 장례식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니카라과 국민들은 고령의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하거나 더 나아가 사망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대통령이 바이러스를 피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루머도 퍼지고 있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공백은 그의 가족이 채우고 있다. 영부인이자 부통령인 로사리오 무리요가 전면에 나섰다. 무리요는 매일 국영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정부 입장을 전달하고 있지만 그 역시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니카라과 정부는 현재까지 9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으며 이중 1명이 숨졌다는 입장이다. 이마저도 전부 해외유입 확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리요는 지난 9일 “무한한 신의 은총 덕에 니카라과에는 지역 감염이 없다”고 말했다.

니카라과 정부는 시민들에게 부활절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해변에서 휴일을 즐기라고 권고하고 있다. 당국은 국경, 기업, 상점, 학교, 경기장 등을 폐쇄하지 않았고 지난달 중순에는 ‘코로나19 시대의 사랑’이라는 명칭의 친정부 집회를 직접 개최하기도 했다. 입국 제한은 물론이고 격리 조치도 없다.

오르테가 대통령의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 오르테가는 지난 4일 트위터에 해변에서 놀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 사진을 올리고 “우리는 특별한 나라를 가졌다.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게 최선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전 국민을 집에만 머물도록 하는 국가에서도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빈국 니카라과에서 공식 확진자 수가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도 강하다.

수도 마나과의 공중보건 의사인 호세피나 보닐라는 자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관련해 “검사를 적게 하면 확진자도 적을 수 밖에 없다”고 WP에 말했다. 그러면서 “남반구에서 아이티 다음으로 가난한 니카라과에 바이러스가 번지면 재앙적 시나리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니카라과 국민들은 정부의 역할 부재 속에 스스로 바이러스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다. WP에 따르면 카톨릭 신자가 다수인 이 나라에서 교회는 부활절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립 학교들은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고 있고, 정부 권고와 달리 해변은 텅 비어 있다.

레오나르도 토레스 국가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집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인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인권위원회(IACHR)는 니카라과 정부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즉각 코로나19 전염병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맑스주의 게릴라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지도자로 1979년 우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1984년 국민들은 국가적 영웅인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다만 2007년 재집권 이후부터는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권위주의 통치자로 급격히 변모하며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