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일당, 38개 텔레그램방에서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입력 2020-04-13 17:38

인터넷 메신저 성착취물 유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박사방’ 일당들의 범행이 마치 유기적 결합체처럼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운영자 조주빈(25)씨는 38개 이상의 ‘그룹방’을 운영했는데 피해자 물색,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수익금 환전·인출 등의 범행이 한 몸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박사방 회원(관전자)들은 이 과정에서 조씨를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조씨는 ‘말 잘 듣는 회원’들의 요청사항을 들어주면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조씨 등 박사방 일당은 고액 아르바이트, 조건만남, 용돈제공 등의 미끼를 던져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피해자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텔레그램 채팅창에서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때 대화 내용은 조씨의 휴대전화로 캡처되고 있었다.

조씨 측은 이후 피해자들에게 면접 명목이라며 소액을 먼저 보냈다. 향후 많은 돈을 줄 수 있다며 피해자들로부터 얼굴 사진과 약간의 노출이 있는 사진을 전송받았다. 또 아르바이트에 신분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신분증을 요구했다. 생년월일을 제외한 주민등록번호 뒷부분은 가려서 보내라는 식으로 의심을 피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되면 돌이키기 어려웠다. 조씨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진, 출신학교, 친구 등의 정보를 확보했다. 이어 모집한 사회복무요원을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해 피해자의 가족 신상과 집주소, 연락처 등을 구했다.

이후 피해자에 대한 가혹한 협박이 이어졌다. 조씨는 피해자의 노출 사진을 갖고 있고, 조건만남을 찾는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심한 노출이나 성적인 행동과 관련된 영상을 요구했다.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피해자에게 남성과 직접 성행위를 하는 영상을 찍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가 성착취 영상물로 박사방 홍보자료를 올리면 회원들이 이를 즉시 유포하는 등 조직적인 음란물 배포활동이 이뤄졌다.

박사방 회원들은 단순 관전자들과도 거리가 있었다. 일정 등급 이상의 회원이 되려면 박사방에서 활발한 활동과 함께 개인정보·금품 제공 등의 조건이 필요했다. 내부규율을 위반하면 신상이 공개되는 불이익을 받는 등 마치 조직폭력배 같은 행태도 일삼았다. 회원 중 범행 수익금을 인출하는 담당자들은 수고비 명목으로 일정액을 받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개인 SNS에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게시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제공해서도 안 된다”고 당부했다.

검찰은 조씨가 보유한 가상화폐(암호화폐) 지갑 15개와 증권사 예탁금, 보유 주식 등에 대해 일단 동결조치를 취한 상태다. 조씨에게서 압수한 현금 1억3000만원도 동결됐다. 향후 조씨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면 해당 범죄수익들은 국고로 환수된다.

검찰은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 변경 및 개명 절차 등에 대해서도 지원한다. 검찰 등과 연락이 되는 피해자 21명 중 14명이 개명 절차를 진행 중이다. 또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연계해 치료비, 생계비, 학자금, 취업 지원비, 이사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검찰은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아청법상 음란물 배포·소지죄로 벌금형이 선고된 자도 신상등록 대상에 포함하도록 법률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구승은 나성원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