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지금은 기본소득 고려할 때… 인간적이고 기독교적”

입력 2020-04-13 17:36 수정 2020-04-13 18:05
프란치스코 교황이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여파로 폐쇄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이날 부활절 미사는 사상 처음으로 신자 참석 없이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AP·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본소득’ 도입을 지지했다고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교황은 이날 세계 사회운동단체에 보낸 부활절 서한에서 “지금은 당신이 수행하고 있는 고귀하고 필수적인 일을 인정하고 이를 존엄하게 만들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wage)을 고려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황은 “노점상, 재활용업자, 순회공연자, 소농, 건설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많은 비공식부문 종사자들이 법적 보호장치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은 어려운 시기를 지낼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입이 없고 봉쇄는 점점 더 견딜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그에 따른 봉쇄 조치(셧다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두 배나 큰 타격’을 줬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보편적 기본임금은 ‘권리없는 노동자는 없다’는,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적인 이상을 확실하게 달성하고 보장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의 기본소득 발언은 몇몇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해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나왔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코로나19 피해가 큰 스페인이 취약 가구에 대한 항구적인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스페인 연립정부의 두 축인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는 지난해 말 코로나19 사태 전 기본소득 도입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2조2000억원달러(약 2676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 일환으로 소득 상한을 두고 1인당 1200달러(약 146만원)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5월 중 전국 1400만가구에 4인가족 기준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재산·소득에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재난기본소득으로 주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아래쪽 가운데)이 12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진행한 부활 대축일 미사 후 강복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틴어로 '로마와 온 세계에'라는 뜻)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교황은 서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대다수 사람들이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황은 “비좁고 쓰러질 듯한 집에 사는 사람들, 노숙자들, 이민자와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 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며 사회운동단체들을 향해 “당신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들을 덜 고통스럽게 만든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교황은 코로나19의 폭풍이 지나가는 동안 ‘대유행병 이후의 삶’에 대해 숙고해볼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교황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혜를 갖고 있다”며 “나는 이 위험한 시기가 우리의 잠자는 양심을 흔들고, 돈이라는 우상숭배를 종식시키고, 인간의 삶과 존엄을 중심에 놓은 휴머니즘적 전환을 허용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그 어느 때보다 사람과 공동체, 국민을 중심에 놓고 합심해 치유하고 보호하고 나눠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집전한 부활절 미사 특별강론에서도 무관심과 이기심, 분열, 망각을 경계하며 “세계 각지에 사는 약한 형제자매들을 혼자 두지 말라”고 말했다. 이번 부할절 미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최소 인원만 참석한 채 진행됐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