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 부장판사 전용차량’의 개선방안 검토를 맡았던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 재정·시설분과위원회(분과위)가 ‘현행 유지’를 다수의견으로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분과위의 다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법 부장판사에게 더 이상 전용차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폐지 절차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루면서 고법 부장판사 전용차량이 실제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분과위는 고법 부장판사 전용차량의 현행 배정기준을 유지하고, 퇴직자 차량만 폐지하자는 내용을 다수의견으로 한 보고서를 지난달 사법행정자문회의에 제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해 11월 2020년도 예산안을 예비심사하면서 “고법 부장판사급 전용차량 운영 폐지·축소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한 것과는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분과위 다수의견에는 ‘고법 부장판사 전용차량을 축소하는 것은 헌법 106조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헌법 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가 아니면 파면되지 않고, 징계처분 없이는 정직 등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고법 부장판사들의 동의 없이 전용차량을 폐지하는 것은 불합리한 불이익 처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수의견은 검찰이 지난해 검사장 전용차량을 폐지했다고 해서 사법부가 반드시 뒤따를 이유는 없다고 봤다. 구체적으로는 검찰은 행정부 소속의 행정기관으로 ‘청’급이고 사법부는 3권 분립의 주체 중 하나인 ‘부’이므로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고법 부장판사는 공직자윤리법상 재산공개의무와 퇴직 후 취업제한 같은 불이익을 받는데 반대급부 없이 무작정 전용차량을 없애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소수의견은 일반 국민의 시각에선 판사와 검사가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고법 부장판사들이 재산공개 의무나 취업제한 같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공직윤리 차원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지는 일반적 의무이므로 전용차량과 연결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현직 고법 부장판사를 재정·시설분과위 위원장으로 둔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해충돌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분과위원장의 임명·위촉권은 대법원장에게 있다. 재정·시설분과위는 법관 6명, 법원공무원 4명, 외부위원 4명으로 이뤄졌는데 대다수가 현행 유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 9일 분과위 다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법 부장판사 중 재판업무만 하는 경우 전용차량을 배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폐지 시점, 보완조치 등에 대한 논의는 다음 달 14일 회의로 다시 미룬 상태다. 당초 법사위가 대법원에 제시한 개선방안 보고시점은 지난달 31일이었는데, 사실상 마감을 어긴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마감 전날인 지난달 30일 구체적인 개선방안 없이 ‘전용차량을 단계 감축해 늦어도 2024년 2월까지 완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고서를 법사위에 냈다. 행정처는 전용차량의 남은 리스계약 기간과 중도해지 위약금 등 비용문제로 일괄 폐지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리스계약 연장을 안 하겠다는 정도의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법개혁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