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르겠다” “신상 털었다”…日 횡행하는 감염자 마녀사냥

입력 2020-04-13 16:30
7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유흥가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마녀사냥’ 같은 괴롭힘이 확산하고 있다. 감염자의 동선 등 공개 정보를 악용해 소속 지방자치단체, 대학 등에 신상정보를 캐려는 전화가 빗발치는가 하면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까지 나와 감염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교토(京都)부 교토시 소재 교토산업대학에는 학생으로 인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표된 지난달 30일 이후 항의 및 비방 전화와 메일이 수백건씩 쇄도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3일 보도했다.

학교의 온라인 게시판과 SNS 등에도 학생들을 “생물병기”라며 욕하는 내용이 게재됐다. “감염된 학생을 알아냈다”는 식의 신상털기도 인터넷에 퍼졌다.

교토산업대는 본교에 재학 중인 학생 3명이 집단감염을 발생시켰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지난달 2일~13일 일본이 출국 주의를 요구한 감염증위험정보 ‘레벨1’ 국가인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후 학생들이 여행 후 세미나 등에서 감염을 확산시킨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인터넷상에서는 비난이 고조됐다. 특히 교토산업대에는 “대학을 불 지르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걸려오는 상황이다.

일본 감염증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인 도도부현(都道府県)은 바이러스 감염자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감염자의 이동 경로와 밀접 접촉자 선별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병원, 복지시설을 제외한 감염자의 근무지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많은 기업이 스스로 확진자 발생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 맥도날드와 일본 다이소가 직원 가운데 감염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요미우리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정보를 이용해 비방과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싸우는 대상은 사람이 아닌 코로나19”라고 호소하고 있다.

9일 도쿄 신주쿠행 열차를 타기 위해 일본 최대 유흥가인 카부키쵸의 한 횡단보도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쿠시마(徳島)현은 지난 2월 25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여성 승객이 도쿠시마현 한 마을에 거주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 마을 사무소에는 여성의 거주지와 이름을 밝히라는 전화가 수십 건 걸려왔다. SNS상에서는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이 여성의 이동 경로가 나돌았고 결국 마을이 나서서 여성에 대한 비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마녀사냥과 가짜뉴스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보는 사례도 나왔다. 가가와(香川)현 다카마쓰(高松)시의 슈퍼마켓 체인 무미(Mumie)는 회장 부부가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했다는 가짜뉴스가 지난 2월 SNS상에서 확산하면서 이달 매출이 10% 감소했다. 회사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매출은 급격히 감소해 언론이 허위 정보라고 보도하기 전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요미우리는 코로나19 감염자를 대상으로 한 비난과 비방이 계속될 경우 감염자가 지자체에 정보 공개를 거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토 요시히로(佐藤佳弘) 무사시노(武蔵野) 대학 사회정보학 명예교수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정보가 번지면 사회의 불안도 확산된다”며 “개인이 냉정히 감염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NHK가 각 지자체와 후생노동성의 발표를 집계한 바에 따르면 13일 일본의 누적 코로나19 감염 확진자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객 712명을 포함해 8111명이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