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 페인트나 스프레이 등으로 회사 소유의 도로에 문구를 썼다 할지라도 도로의 효용을 해치는 정도가 아니면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특수손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성기업 소속 직원 A씨 등의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내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 등은 2014년 10월 24일 충남 아산시 소재 유성기업에서 회사 소유 도로에 페인트와 스트레이 래커 등으로 문구를 적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유성기업 사무실 앞 도로 등에 유색 페인트를 이용하여 직접 문구를 기재하거나 도로 위에 놓인 흰색 천에 문구를 기재하여 페인트가 도로에 배도록 한 점, 유성기업이 외부업체로 하여금 이를 복구하게 했고 그로 인하여 9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든 점 등을 종합하면 손괴죄에 해당한다”며 A씨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도로 낙서 행위 만으로는 사건 도로를 통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도로를 그 본래의 사용 목적인 통행에 제공할 수 없게 됐다”며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유색페인트와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해 도로 바닥에 문구를 기재한 행위는 도로의 효용을 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산업현장에 위치한 도로의 주된 용도와 기능은 사람과 자동차 등이 통행하는 데 있고, 미관은 그다지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며 “도로 바닥에 기재한 문구 때문에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자동차 등이 통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