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희귀약 재고 없다는데… 식약처는 “수급 문제없다”

입력 2020-04-12 16:49 수정 2020-04-12 17:22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최근 홈페이지에 "코로나19로 인해 희귀의약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환자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는 공지문을 올렸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홈페이지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희귀약품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국가 간 이동 제한에 따라 수입 항공편이 잇달아 결항되면서 해외 제조사조차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희귀약품 신청 시기를 앞으로 당기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지만 입고 일정조차 기약이 없어 환자 치료일정까지 미뤄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희귀약품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센터)에 따르면 국내 희귀약품 수급에 줄줄이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센터는 최근 홈페이지에 “코로나19로 인한 항공편 결항 및 축소로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일부 의약품의 입고 지연이 예상된다.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입고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공수병 약인 ‘베로랍’과 항부정맥제 ‘퀴니딘’, 장기이식 면역거부 억제제 ‘라파뮨 시럽’까지 3가지 약품에 공급난이 발생했다. 퀴니딘은 다음 달, 베로랍은 이달 중순이나 말에야 수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라파뮨 시럽의 경우 해외 제조사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입고 일정도 미지수다.

희귀약품 수급을 전담하는 센터에서 공급난을 공식화한 데 이어 의료 현장에서도 희귀병 환자 치료에 비상이 걸렸다. 소아용 희귀의약품을 관리하는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공급 신청을 하면 곧바로 수급되던 희귀약품들이 코로나19로 공급이 늦어지고 있다. 보통 치료 한두 달 전에 주문하던 약품도 신청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있다. 약품 공급이 불안정해 미리 약품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약품 수급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강조한다. 식약처는 코로나19로 ‘멜팔란’ 등 소아암 치료용 희귀약품 공급난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난 6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대해 “수급에 이상이 없다”며 “센터를 통해 멜팔란 1000바이알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는 식약처가 언급한 멜팔란 1000바이알이 언제 공급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통 멜팔란이 환자에 공급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신청 이후 한 달 이내다. 그런데 최근 국내로 들어온 600바이알은 지난 2월에 신청했던 물량이었다. 신청 이후 한 달을 훌쩍 넘긴 이달 1일과 6일에야 두 차례에 걸쳐 공급됐다. 센터 관계자는 “1000바이알이 국내로 공급되는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예상보다 공급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희귀병 환자들 사이에선 하루하루 생존을 다투는 상황에서 적기에 치료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커지고 있다. 상급병원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에 신청한 멜팔란은 언제 공급될지 알 수가 없다. 조혈모세포이식을 앞둔 아이의 보호자들이 제때 치료가 가능할지 우려하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다른 희귀병 환자는 센터로부터 5월 중순~6월 초에야 약품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는 공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상급종합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희귀약품 공급난으로 인해 환자 치료 일정을 미루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다른 희귀약품들로 공급난이 번지기 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웅 기자, 세종=전성필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