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더라도 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 조사국 국제종합팀은 12일 발표한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전염병 확산이 금년 2분기 중 진정되더라도 금번 사태는 세계 경제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버금가는 수준의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주요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만큼 세계 경제에 ‘전례 없이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게 이들 예상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통화정책방향을 설명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2분기에 진정되더라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 그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제종합팀은 “코로나19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국에서 1~2개월의 짧은 시차를 두고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과거보다 더욱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미국 중국 EU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67.9%”라며 “이들 국가의 경기 부진은 직접적인 세계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로지역 등 선진국은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만큼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동제한 등 코로나19 확산 억제 조치로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판단됐다. 2018년 기준 주요국별 서비스업 비중은 미국 80.6%, EU 73.4%, 일본 69.6% 등이다. 국제종합팀은 서비스업 부진이 고용상황 악화→가계소득 감소→소비 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국 경제의 동반 부진은 교역을 위축시키며 세계 경제를 더욱 흔든다. 미국 EU 중국 일본의 상품 수입은 세계 GDP의 9.5%, 세계 상품교역의 41.3%를 차지한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미국 ‘IT(정보기술) 거품’ 붕괴 등 주요국 경제가 충격을 받을 때마다 해당 국가 교역이 줄면서 세계 교역도 감소를 면치 못했다.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세계 교역은 23% 줄었다.
국제종합팀은 “(과거 경제위기 사례를 보면) 주요국 간 교역보다 여타 지역과의 교역 감소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며 “주요국 경제 부진이 주변국 수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주요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교역 축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주요국에 대한 GDP 대비 수출 비중이 24.3%로 아세안(26.7%) 다음으로 높다. 주요국 동반 부진에 따른 교역 축소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라는 의미다.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간접적 파급효과로는 해외여행 급감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교류 위축, 주요국 중간재 생산 차질에 따른 공급망 훼손, 실물 부진 장기화로 인한 취약국가 재정·위환 위기와 기업 신용경색 심화도 지적됐다.
국제종합팀은 아시아 독감과 홍콩 독감 등 과거 세계적 감염사태가 1~2년간 지속된 점에 주목하며 “세계 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1957년 1월 중국 윈난 지역에서 발생한 아시아 독감은 그해 말부터 진정되다 이듬해 초 미국 유럽 등에서 재발하며 4월까지 이어졌다. 68년 7월 발생한 홍콩 독감은 이듬해 4월 확산세가 꺾였지만 그해 말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재발해 70년 초중반까지 지속됐다. 아시아 독감과 홍콩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각각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종합팀은 “하반기 중 주요국 경제활동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겠으나 회복속도는 완만할 전망”이라며 “과거 사례처럼 (코로나19) 2차 확산이 나타날 경우 금년 중에는 주요국 경제활동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