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균도, 범죄자도 아닌데 ㅠㅠ’ 자가격리자는 웁니다

입력 2020-04-12 16:00 수정 2020-04-12 16:15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12일부터 25일까지 14일간 자가격리 생활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의심증상을 보이던 직장동료를 보건소까지 차로 태워줬는데, 그 동료가 코로나19 양성진단을 받으면서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 아내 그리고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 사는 A씨는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생각에 격리장소를 16.5㎡(5평) 남짓 안방으로 제한했다.

‘조용히 방 안에서 지내면 된다’며 쉽게 생각했던 격리 생활은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A씨는 “안방에 책상이 없고, 침대만 있어서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며 “평소 좋지 않던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쐬는 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내가 문 앞에 두고 간 식사를 받을 때 외에는 방문을 열지도 못했다.

자가격리 기간 중이던 지난달 15일은 둘째 아이의 첫 생일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거창하게 돌잔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거실에서 조촐하게 상을 차리기로 아내와 얘기해둔 터였다. 그러나 자가격리가 시작되면서 A씨는 약식 돌잔치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 화상채팅으로 돌잔치를 지켜봐야 했다. 사이에 달랑 문 하나 있을 뿐인데,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남겼다”며 아쉬워했다.

모니터링은 휴대전화에 설치한 자가격리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뤄졌다. A씨는 “방안에만 있었는데 휴대전화 위치에 따라 격리장소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이 울리고, 담당 공무원 전화가 와서 애를 먹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자가격리자 대부분은 A씨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 2일 동남아에서 귀국한 30대 B씨(여)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자가격리 수칙들을 빠짐없이 지키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가족 3명이 생활하는 B씨 집에는 화장실이 하나다. 격리 수칙은 격리대상자가 다른 사람과 같은 화장실을 쓰려면 이용 때마다 락스로 청소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는 “혹시라도 나 때문에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리면 안 되니까 최대한 동선이 겹치는 건 피하고 있는데, 이런 수칙은 도무지 지키기가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남편과 함께 유럽에서 입국한 30대 C씨(여)는 시댁에서 격리 생활 중이다. C씨는 “시부모님 식사 한 끼 차려드리지도 못하고, 매일 음식만 받아먹고 있어서 너무 민망한 마음”이라며 “1년 넘게 해외에서 근무하고 돌아와 빨리 지인들도 만나고 싶은데 사태가 심각한 만큼 꾹 참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자가격리지침을 위반하는 이탈자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자가격리를 진행 중인 사람은 5만7278명이다. 이 가운데 106명이 자가격리를 어기고, 격리장소를 이탈했다가 조사를 받고 있다. 12명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자가격리자들은 위반자들의 행동은 잘못이라 생각하지만 자가격리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가혹한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일 미국에서 유학하다 입국한 30대 D씨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을 느꼈다”며 “유학생들끼리도 자칫 잘못하면 뭇매를 맞을 수 있으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B씨는 자가격리자 모두에게 ‘전자팔찌’를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불쾌감을 느꼈다. 그는 “몇몇 일탈 때문에 다수를 잠재적 위반자로 보고 통제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가격리자들의 이런 심리적 어려움을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2주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대상자들은 두려움과 불안, 무기력증이 생길 수 있고 심해지면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격리자들의 이탈 역시 이런 어려움에서 발현되는 심리적 박탈감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자신은 열심히 지침을 따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꽃구경하러 다니고, 또 일부는 지침을 위반하기도 하니까 ‘공정하지 않다’는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여기에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부정(denial)심리’가 더해지면서 위반자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가격리를 준수한 사람들에게 ‘긍정적 보상’을 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곽 교수는 “당신의 ‘2주’가 한국을 구하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해 주고, 격리를 잘 이행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재난을 견뎌낸 작은 영웅들’ 같은 식으로 표창장을 만들어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 강화는 이런 긍정적 보상으로 자발적인 지침준수를 유도한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자가격리 수칙을 더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전자팔찌 등으로 감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부정적이었다. 임 교수는 “전자팔찌 자체에 일종의 낙인효과가 있기 때문에 무리한 측면이 있다”며 “그보다는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국민에게 어떻게 공정한 보상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우진 김지애 송경모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