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한 곳에서 여러 차례 재위촉돼 근무했다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며,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고용주 측은 해당 근로자의 소득이 많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불시에 해고를 통보한 것은 옳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울산광역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해고를 구제한 재심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2일 밝혔다. 쟁점이 된 것은 2005년부터 13년간 울산시립합창단 부지휘자로 근무한 A씨의 사례였다. A씨와 울산시의 계약은 1~2년마다 갱신됐는데, 2016년 맺어진 계약은 2018년 3월 만료될 예정이었다.
A씨는 2018년에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계약이 갱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울산시는 2018년 2월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에 A씨는 부당해고임을 주장하며 구제를 신청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에서도 부당해고 판정이 내려졌다.
울산시는 재심 신청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울산시는 A씨와의 계약에 계약 갱신에 대한 내용이 없었으며, A씨의 근무 태도가 불성실했기 때문에 계약 종료의 합리적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연봉을 1억원 넘게 수령하는 상위 근로소득자로서 법상 계약 갱신 기대권을 보호받는 기간제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법원은 “A씨는 기간제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근로소득 상위 25%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간제 노동자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법원은 “A씨가 13년간 7회에 걸쳐 항상 부지휘자로 재위촉됐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재위촉되리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됐을 것이므로 갱신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했다.
결국 법원은 울산시의 통보에 합리적 근거가 없었으며, 따라서 계약 종료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A씨의 기량이 확실하게 저하됐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점 등도 부당해고를 뒷받침하는 한 근거가 됐다. 법원에 따르면 울산시는 A씨의 불성실함을 주장했지만 규정에서 정하는 대로의 근무평정을 거친 건 아니었다. 단원들 일부나 전임 지휘자는 A씨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