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韓醫)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의술. 둘째, 한의술(醫術)로 병이 난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 주로 침술과 약 처방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라고 쓰여있다. 즉, ‘한의’라는 의미 안에는 치료하는 사람 즉 ‘한의사’와 ‘우리 역사성이 담긴 의술’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조선 말, 대한제국 시기 한의학 의술로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아 관직에 있었던 의관은 고종황제의 편지 한 장으로 인해 총칼을 들고 의병장이 된다. 문(文)에서 무(武)라는 양극단의 삶을 살았던, 그렇게 마지막을 뜨겁게 불태웠던 어느 한의사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정환직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해 영천성을 탈환한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10세손이다. 가세가 넉넉하진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공부를 열심히 해 1885년 향시에 장원급제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더는 과거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의술을 연마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 그는 의술보다 인술을 펼쳐서 고을마다 ‘착한 의사’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887년 44세 때 형조판서 정낙용(鄭洛鎔)의 추천으로 처음 벼슬에 올랐다. 1888년 의금부의 금부도사 겸 중추원의관 되었고, 1894년 삼남참오령(三南參伍領)에 임명되어 동학군을 진압했다. 그러나 조선 정부가 일본군을 데려와 동학 농민군을 토벌하기로 하자 이를 반대하는 ‘일병의뢰반대상소(日兵依賴反對上疏)’를 올렸다. 그해 겨울 다시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어 고종의 밀지를 받고 황해도 지방의 동학군을 진압하게 됐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정환직은 태의원별입시(太醫院別入侍)로 다시 시종관 벼슬에 올랐다. 1899년 삼남검찰 겸 토포사(三南檢察兼討捕使)로 삼남 일대의 민정을 두루 살펴보았으며, 1900년 도찰사에 임명돼 농민들의 원성이 높은 경주부윤(고려·조선시대 지방행정구역의 단위인 부(府)의 장관직)을 파면하다 오히려 본인이 구금되기도 했다. 석방된 뒤 정환직은 부패한 조선의 관리와 정치적 관계에 실망하여 관직에서 사직할 것을 청했으나 고종황제에 의해 다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되었다.
고종황제는 정환직의 충정과 빼어난 의술을 귀하게 여긴 것 같다. 1905년 일제의 무력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나라를 팔아먹으려 혈안이 된 반민족행위자들도 있었지만, 눈물겨운 애국지사들 또한 더러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1905년은 정환직에게도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이 됐다. 어느 날 밤 고종은 비밀리에 정환직에게 밀지를 보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할 것을 권했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정환직은 곧바로 관직을 사직했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에게, 고향에 내려가 의병을 모집해 서울로 진격하여 고종황제를 구하고 국권을 회복하도록 권했다. 정용기는 청송(경상북도 청송군) 주변에서 ‘삼남의병부대’를 만들어 1대 의병장이 되었다. 정환직은 관직에서 물러난 동지들과 협력하여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오대산으로 보낸 후 아들 정용기 의진에 합류해 서울 진공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도중에 정용기 의병장이 일본군에 붙잡히고 만다. 의병들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정환직은 급히 아들이 이끄는 의병들을 독려하러 1907년 9월 19일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해 10월 7일 아들 정용기 의병장이 입암(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일본군 영천수비대와 맞서 싸우다가 총탄에 맞아 순절했다. 의병 정순기(鄭純基)·이세기(李世紀)·우재룡(禹在龍) 등의 추대를 받아 정환직은 ‘삼남의병부대’ 2대 의병장이 됐다. 정환직은 동쪽으로 포항, 서쪽으로 신령, 북쪽으로 청송을 공격하여 일본군 수비대에게 큰 피해를 줬다. 그러나 정식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닌 일반 농민들로 이루어진 의병부대로 지속적인 전투를 치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량 공세로 다가오는 일본 정식 군인과 싸움은 점점 의병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전투 중 사상당하는 의병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의병들의 전의가 크게 떨어져,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각지로 흩어져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병들이 흩어진 바로 이때 노환으로 인한 병이 들어 자신을 치료하던 중 일본군 수비대에게 발각되어 붙잡히고 만다. 당시 의병들의 기세가 대단했던지라 일본군은 정환직을 회유하여 의병들이 스스로 해체, 의진이 붕괴하기를 원했지만, 끝까지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정환직은 결국 총살형을 당해 순국했다.
정상규 작가는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통해 숨겨진 위인을 발굴해왔다. 현재 ‘국가유공자 지원 시민단체 포윅스’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독립운동 맞습니다’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