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노무라 가츠코는 아주 비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출신 성분이 낮아 아버지와 격이 맞지 않았다. 조부모는 어머니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심지어 그런 어머니의 아들인 나까지도 냉랭하게 대하곤 했다.
부모님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만났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온 두 사람은 신앙 안에서 사랑을 키워갔다. 조부모께서 교회를 다닌 것은 서구 문물을 빨리 접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앞서서였다. 노무라 가(家)는 일본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의 충복 모리 란마루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분은 혼인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나와 내 여동생을 낳았다. 그런데도 노무라가에선 미천한 집안 출신인 어머니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봉건적 행태는 양반 가문의 자제가 양민과 결혼해 갈등을 빚는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항상 사랑으로 어머니를 대하셨다. 많이 못 배운 어머니에 대해 하나님께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당신의 자녀로서 성장하고 축복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고 늘 존중하셨다.
그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었는데 당신이 아는 지식을 겸손하게 어머니에게 알려주셨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강한 지식 욕구를 느끼신 것 같다. 과부와 고아의 삶을 챙기신 예수, 화평을 주러온 예수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이 부부의 더 없는 교재였다.
그 무학의 어머니는 훗날 한국의 민중신학자 서남동 박사(연세대·한신대 교수)와 일본 도시샤대학 동창이 되고 노벨상 후보에 오른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