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생겼어요”…코로나發 구조조정에 쓸린 사람들

입력 2020-04-09 20:01 수정 2020-04-09 20:04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기업이 휘청이면서 직원들의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 소비자들은 ‘의류비’부터 아낀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찬바람에 의류업계는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9일 의류업계에 따르면 신성통상은 수출사업부문 근로자 55명, 신원은 해외사업부 7명, 형지엘리트는 5명을 정리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인무역은 권고사직·무급휴직·급여삭감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수출의류기업 ‘톱3’에 꼽히는 한세실업은 신입사원 공채를 중단했다.

탑텐의 '8.15 캠페인 티셔츠'. 연합뉴스

남은 자들의 불안과 슬픔

탑텐·지오지아 등을 운영 중인 패션 기업 신성통상은 지난 6~7일 이틀 동안 직원 55명에게 사전 공지 없이 전화로 해고 통보를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신성통상 측은 직원 20여명에게 “해고 통보가 아닌 권고사직 관련 면담을 전화로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직원들 말은 다르다.

신성통상 직원 A씨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내 메신저가 있는데 이틀 사이 수출사업부에서 메신저 불이 꺼진 사람이 55명이었다”며 “사측은 전원 배치나 복직 등을 대기하는 인원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그런 인원이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A씨는 “전화를 받은 직원들 중 몇몇은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복직을 고려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데, 그 분들은 퇴직하셨어요. 자리를 이미 비웠거든요”라고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A씨는 수출사업부문 부서가 있던 건물 4층이 적막해졌다고 했다. “층 자체가 조용해졌어요. 거래처분들도 회사에 종종 오시는데 ‘회사가 왜 이렇게 조용하냐’ ‘다들 어디간거냐’고 질문하세요. 그러면 신성통상 기사를 검색해보라고 하는데, 다들 ‘죄송하다’면서 미안해하시니 뻘쭘하죠.”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고 하루이틀 내로 짐을 정리해 떠나는 동료들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남은 직원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A씨의 전언이다.

“남은 사람들도 마음이 안 좋죠.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인데 너무 미안하고 다른 직원들도 트라우마 생긴 것 같다고 말해요. 10~20년 이상 길게 근무하신 분들도 있는데 3분의 2가 퇴직금 못 받는 1년 미만의 직원들이에요. 사회생활 첫 걸음 내딛는 사람들한테 세상의 쓴 맛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A씨는 위기에 대응하는 사측 태도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저희보다 더 어려운 업체들도 임원 월급 삭감하고, 직원 월급 30% 삭감하고, 근무 일수 줄이면서 다같이 이겨내자고 하는 곳들 많아요. 자금이 원활하게 흐르지 않는 건 업계가 다 똑같은데 대처가 다르잖아요. 임원 월급 하나도 안 깎고 사원들만 내보낸 건 신성통상이 유일해요.”

직원들과 미리 소통하거나 공식적인 안내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A씨는 “해고 관련해서 공식적인 안내는 없었고 일주일 전부터 직원들 사이에서 불안하게 ‘카더라’만 돌았다”며 “일주일 내내 아무 일 없길래 루머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6일에 해고가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직원들 다 ‘왜 내가 남았는지’ ‘왜 내가 해고되는지’ 생각해보지만 아무도 진실은 모른다”며 “지금 출근은 하는데 일이 없다”고 한숨지었다.


구조조정 3일 전 통보…갑자기 쉬게 된 사람들

마크앤스펜서, 클럽 모나코 등 외국 유명 브랜드를 들여오고 있는 풍인무역은 수출 업무를 하는 의류업계 중 가장 먼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직원 50%를 대상으로 권고사직이 진행됐고, 남은 인원은 급여의 30%가 삭감됐다.

구조조정으로 현재 무급휴직 중이라는 풍인무역 직원 B씨는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의 소통 및 대화 없이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다“며 ”심지어 구조조정 시행 3일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무급휴가 관련 면담 당시 ‘무기한’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동의서에는 ‘3개월’로 표시가 돼있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은 끝 모를 ‘무급’ 휴직 기간을 회사가 서류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면담한 직원 중 일부는 권고사직과 무급휴가 중에 선택을 하라고 강요받았어요. 남은 인원들에 대한 급여삭감은 1일부터 시행됐고요. 남아있는 동료한테 듣자하니 이제는 남은 인원들 중에서도 핵심만 남겨놓고 일부는 주2일 근무를 돌린다고 하더라고요. 주2일 근무 인원은 추가로 급여를 20% 삭감한다고도 공지를 했다네요.”

B씨도 사측의 위기 대응 태도에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상생하기 위한 방안을 기대했던 직원들은 모두 절망과 실망을 크게 했다”며 “정부 지원을 받으면 모두가 조금씩 희생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 기회에 인원을 줄이겠다는 사측의 의도가 너무 다분히 보이니까 다들 회사에서 마음이 떠났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고통을 분담하기보단 손쉽게 인력 구조조정을 선택해버린 회사의 대처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니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업체가 구조조정과 무급휴가 말고는 다른 움직임이 없으니 실망이 커요.”

근로자들도 구조조정 자체에 대해 무조건 부당하게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생업을 위협받고 삶의 틀이 흔들리게 된 직원 개개인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와 방식에 상처받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통보’로 밀어부치기식 대응을 하는 데서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지난달 17일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 곳곳에 '공장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수출길 끊겨 매출이 없다”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이 업체들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다시 수출하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는 곳들이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의 수출 주문이 뚝 끊긴 게 구조조정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거나 취소되면 즉각 자금 압박으로 이어진다. 국내 기업들은 보통 어느 정도 수출 주문량을 예상하고 원·부자재를 미리 사놓기 때문에 주문 취소는 악성재고를 낳는다. 원·부자재 구매에 대한 납기일은 다가오는데 회사로 들어오는 돈은 없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출길이 열릴 가능성이 당장 보이지 않다보니 ‘급여 삭감’ ‘무급휴직’ ‘권고사직’ 등 당장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인력 구조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니 당장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고 자금 순환이 안 되고 있다”며 “이 연쇄작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