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방청객에게 다가간 출연자가 옆자리에 앉은 그의 연인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넌 내면만 보는구나?”. 관객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린다. “이 여자 참 못생겼다”는 말이 개그코드라니.
tvN ‘코미디 빅리그’가 최근 2쿼터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 예능에는 유독 외모 평가가 많고,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 중심에 코미디 빅리그가 있다. 여성 비하를 개그 코드로 삼아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앞선 쿼터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설정이 많았다. 여성은 젊고, 날씬해야 하며, 예뻐야 한다는 인식은 무대 곳곳에 묻어난다. 지난 1월 19일 방송에는 가수 루리가 ‘리얼극장 초이스’에 출연했다. 루리가 발랄한 댄스를 선보이자 “어떤 원귀와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겠다”고 소리쳤던 양세찬은 결국 루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성의 무기는 ‘젊음과 미모’이고, 남성은 여기에 환호하며 뿌리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했을까. 여성상품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월 12일 ‘위험한 초대’에는 박나래가 이용진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구애 작전을 펼쳤다. 동창의 집에 놀러 간 박나래는 자신의 코트를 받아주는 남성 출연자에게 “지금 옷 받아주면서 가슴골 봤죠?”라며 눈을 치켜떴다. 이용진이 나타나자 수위는 더 높아졌다. 박나래는 “네가 나에게 집적거리는 거 지민이가 알아요?”라며 “너 나 좋아하지? 부부동반으로 해변 놀러 갔을 때 물 밑에서 내 엉덩이 만졌잖아”고 말했다. 이용진은 “정말 미안하다. 바다 거북이인 줄 알았다”고 답했다.
극 중 박나래의 콘셉트는 ‘예쁘지 않고 어리지 않은’ 여성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남성에게 대시하지만 처참히 깨진다. 심지어 자신의 남편도 ‘예쁜’ 여성에게 눈을 돌린다. 시종일관 남성에게 무시 받지만,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발버둥 치곤 한다.
여성을 외모와 나이로 판단한다는 설정은 유머가 아닌 성차별적 요소로 해석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비하와 차별에서 혐오로 이어지는 굴레를 교묘하게 개그로 포장해 자주 노출한다면 대중은 거리낌 없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코미디 빅리그에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내렸다. 여성 출연자의 신체 사이즈나 외모를 개그 소재로 이용해 조롱했다는 이유다. 지난해 서울YWCA도 8월 한 달간 코미디 빅리그에서 성차별 사례 6건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모두 외모 평가였다. 특히 ‘안녕하시죠’를 예로 들었다. 외모 조롱 및 비하를 주요 유머로 삼는 코너다. 남성 출연자는 박나래에게 “외모가 뭐가 중요하냐 내면이 더 중요하죠. 여러분”이라며 방청석에 앉은 연인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남성 방청객에게 “넌 내면만 봤구나”라며 여자 방청객의 외모를 조롱했다.
서울YWCA는 “예능에서는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여성에게 젊음과 외모가 중요한 가치라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예능을 통해 지속해서 강조된다면 여성은 본인의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자리에서도 외모가 먼저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타인의 외모에 대한 조롱, 미화, 평가는 유머가 아닌 차별”이라며 “이런 발언은 재미있지도 않고 재미있게 그려져서도 안 된다. 예능 속 유머가 지닌 차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