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피해자의 부모들은 ‘왜 우리가 피해자인데 (재판 결과를) 모르냐’고 답답해 합니다. 주거지 근처에서 일어난 피해인데 가해자가 또 오면 어떡하느냐고도 합니다.”
성폭력·학교폭력 피해자를 오래도록 대리해온 A변호사는 경찰에서 가정법원으로 곧장 넘겨지는 이른바 ‘촉법소년 사건’의 최종 처분 풍경에 대해 9일 이렇게 말했다. 법원은 피해자 측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한 뒤, 진술을 들으면 “나가세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비공개 재판이기 때문에 나머지 절차는 가해소년과 가해소년의 부모만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14세 미만의 소년범들은 소년원에 보내지 않고 상담 교육만을 받게 하는 처분을 자주 받는다. A변호사는 “이후 피해자 측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본인이 담당해온 무수한 사건에서 처분 결과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불안해하고 답답한 것도, 고심 끝에 이사를 해 버리는 것도 피해자 측이었다고 A변호사는 본인의 실무 경험을 전했다.
미성년자들의 반인륜적 범죄가 알려질 때마다 이른바 ‘촉법소년’에 대한 온정주의 비난 여론이 들끓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소년법 적용 연령을 한 살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측에 재판의 결론을 알리고, 불안감을 불식해 정상 생활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법원에서 실효성 있게 재판을 해야 하며, 정당한 보호처분을 하는지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고 법조계는 말한다.
촉법소년 처분과 관련해 성폭력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제도가 뒷받침돼 있기도 하다는 게 피해자 대리 변호사들의 말이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소년재판 후 바로 훈방을 한다기보다는 ‘소년분류심사원’에 3주가량 위탁을 시키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해소년들의 성향을 조사하는 과정으로 검찰의 구속 절차와 비슷한 것인데, 이때 가해자 부모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경찰의 가정법원 송치 후 많은 부분이 비공개로 가려지는 것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14세 미만의 소년범임을 고려한 조치겠지만, 피해자 측은 “가해소년들이 별다른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A변호사는 “재판을 기다릴 때 ‘룰루랄라’하는 표정의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며 “판사 앞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판을 받은 또래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다.
결국 처분 결과를 피해자 측에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단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가장 가벼운 1호 처분을 받았는지, 무거운 10호 처분을 받았는지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마땅한 결과를 받아들였구나’ 하는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법률가는 “n번방 사건에서 1호 처분이 내려졌다고 한다면, 충격적으로 회자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촉법소년은 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를 일컫는 법률용어다. 이들은 형벌을 받을 만한 범법행위를 했지만 형사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돼 보호처분을 받아 왔다. 처벌을 받는 대신 가정법원 등으로 보내져 감호위탁, 사회봉사, 소년원 송치 등의 처분을 받는데 가장 강한 10호 처분이 2년 이내의 장기소년원 송치 처분이다.
지난달 29일 대전에서는 중학생들이 훔친 승용차를 몰다 사망 사고를 냈다. ‘디스코드’ 메신저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매하거나 유포한 10명 중에는 12세 소년이 있었다. 그 이전엔 부산여중생 폭행 사건도 있었고, 인천초등학생 살인 사건도 있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 등을 담은 소년법개정안 법안들은 국회에서 수년째 계류 중이다.
법무부가 2018년 12월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에서 13세로 하향 조정하는 ‘제1차 소년비행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2년간 별다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3세 미만으로 조정하는 법안 등 소년법 개정안 30여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진척은 없다. 일각에서는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낮추는 것이 근본적 해결이 못 되며 ‘낙인찍기’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형사처벌 연령을 확대했지만 소년범 감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