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당한 채무 관계로 구속된 어느 기독교 신자의 문제에 대해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이를테면 최고재판소의 관사 안에 갇혀 있었다.
…그는 채권자에게 전달되도록 300달러를 재판소에 갚았으나 재판소 측에서는 그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이는 분명히 계략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그곳에 주저앉아서 영수증이 나올 때까지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였다. 그들은 나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그 문서를 찾아 놓겠노라고 말하기에 나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다음 날 아침에 그들은 어둠침침한 문서 보관 창고의 한 모퉁이에 처박혀 있는 영수증을 찾았다며 연락이 왔다. 그동안 그곳에는 직원들이 바뀌었는데 전에 있던 직원은 그 영수증을 후임자에게 맡겨 둔 채 그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실수가 있었다….
한국에는 변호사제도와 같은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대면해 각자 자기의 입장을 설명토록 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입증하는 것이 고작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날조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리를 분별할 만한 사람과 시비가 벌어졌을 경우에 얼핏 보아도 충분한 증거가 있고 또 자기 나름의 주장할만한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돈과 권력은 사실상의 동의어로 되어 있어서 재판은 이에 제공되는 금액에 따라서 결정되며, 재판관(판사)을 위협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뒤에서 밀어주거나 상당한 돈을 가진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판결이 유리하게 내려진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집문당 刊 ‘대한제국멸망사-제3장 정치제도’ 69~71쪽)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