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16): 창녀의 아들

입력 2020-04-09 10:16 수정 2020-04-09 10:20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일본의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1888~1960). '청계천 빈민의 성자' 노 선생 부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러한 아버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이는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였던 가가와 도요히코이다. 그는 일본 근대사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1888년 7월 10일에 도쿠시마 출신 기생 스가오 가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고베의 해운업자인 가가와 준이치였다. 재벌과 기생 부모를 둔 가가와였다.

그러나 그 부모가 그가 네 살 무렵 연달아 죽자 그는 도쿠시마 본가에서 정실부인 손에 자랐다. 그도 나처럼 어려서 부모를 잃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고베에서 해운업자 가가와 준이치와 도쿠시마 출신의 기생 스가오 가메 사이에서 태어났다. 4세 때 그의 부모가 연달아 사망하여 도쿠시마의 본가에서 아버지 정실부인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창녀의 아들이라는 손가락질에 세상을 증오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세군 노방전도대에게 “하나님께서는 서자도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노방전도대원이 “서자만이 아니라 감옥에 있는 죄수도 사랑하십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곧장 전도대를 따라나섰다.

1907년 3월에 메이지학원 신학부 예과를 졸업한 그는 아이치현의 각지에서 길거리 전도를 하다가 폐병으로 쓰러져 위독한 상태에 빠졌고 기적적으로 회복해 같은 해 9월 고베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목사가 된 가가와는 슈바이처, 간디와 함께 20세기 3대 성자로 불릴 만큼 고통받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며 일평생을 살았다. ‘애와 노동’ ‘기독교사회주의론’ 등의 저서를 남겼고 정치가, 문학가, 사상가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가 존경했던 인물 가가와의 신앙관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와 가가와의 사상은 내가 한국인과 한국을 사랑한 배경이 됐다. 그것이 반드시 한국 사람이 아니래도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가 됐던지 사랑을 베풀었을 것이다.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