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직 연구소장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말만 믿고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정 교수 딸 조모씨의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줬다고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임정엽)는 8일 정 교수의 공판기일에 이모 전 KIST 기술정책연구소장을 증인으로 불러 딸 조씨의 인턴증명서가 발급된 경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 교수는 2011년 초등학교 동창생인 이 전 소장에게 부탁해 딸 조씨를 KIST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인턴증명서를 허위로 발급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 교수는 이 인턴증명서를 서울대와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사용했다.
이 전 소장은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정 교수에게) 개인적인 서한을 써줬다”고 밝혔다. 이 전 소장이 말한 ‘개인적인 서한’은 딸 조씨의 인턴증명서를 가리킨다. 검찰은 당시 정 교수가 이 전 소장을 통해 딸 조씨가 실제로는 3일(2011년 7월 20~22일)만 근무했는데도 3주간 인턴을 했다는 내용의 허위 증명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인턴활동을 증명하는 권한은 원래 딸 조씨의 인턴활동을 관리·감독한 KIST 소속 책임연구원 정모 센터장에게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증인신문에 나왔던 정 센터장은 “(딸 조씨가) 하루 종일 엎드려 자고 있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조씨가 무단결근했고 태도가 불성실하다고 평가해 인턴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다는 게 정 센터장의 증언이었다.
검찰은 인턴증명서 발급이 막힌 정 교수가 정 센터장를 우회해 이 전 소장에게 연락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이 이날 정 센터장으로부터 인턴증명서 작성을 사전 또는 사후에 승낙 받은 적이 있는지 묻자 이 전 소장은 “없다”고 답했다.
이 전 소장은 정 센터장에게 조씨 태도에 대한 불만을 들은 기억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 교수가 인턴증명서를 부탁한 2013년 3월 당시에는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소장은 “정 교수가 제게 (활동내용을) 특정해서 부탁을 하는 이메일을 쓴 걸 검찰 조사 과정에서 봤다”며 “정 교수가 그리 말하니 제 친구이기도 하고 믿을 만하다고 해서 믿고 그냥 써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법정에서 정 교수에 대한 배신감도 내비쳤다. 정 교수가 자신이 작성해준 인턴증명서를 임의로 고쳐 딸 조씨 입시에 쓴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전 소장이 당초 써준 원본 확인서에는 ‘2011년 7월 11일부터 3주간 주 40시간씩’이라고 써 있었는데, 정 교수는 이를 ‘2011년 7월 11~29일까지 3주간(주 5일, 일 8시간 근무, 총 120시간)’으로 수정했다. 정 교수는 이 서류를 딸의 서울대 의전원 입시에 활용했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검찰이 “이렇게 수정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 있느냐”고 묻자 이 전 소장은 “없다”고 답했다. 그가 검찰 조사에서 “정 교수가 제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확인서를 공식적 문서로 보이게 하려고 막 가져다 붙인 것 같다”고 진술한 것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이 전 소장은 지난해 10월 정 교수 딸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됐다.
한편 재판부는 정 교수가 기소된 두 사건을 병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형사25-2부뿐만 아니라 형사21부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사문서위조 혐의 등의 공범으로 기소돼 있다. 앞서 재판부는 정 교수 측에게 사건 병합을 원할 경우 지난 3일까지 신청서를 내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정 교수 측은 따로 서류를 내지 않았다. 두 사건이 병합되지 않으면서 정 교수 사건은 형사25-2부와 형사21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그에 따라 형사21부에는 조 전 장관과 정 교수 부부가 나란히 피고인석에 서게 됐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