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흑인 등 유색인종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통계 수치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재난의 속성이 이번 사태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7일(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자의 52%, 사망자의 72%는 흑인이었다. 시카고 전체 인구 중 흑인 인구 비중이 30%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인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이례적으로 높은 것이다.
일리노이주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였다. 일리노이주의 흑인 비중은 14.6%에 불과했지만 전체 코로나19 감염자의 30%, 사망자의 40%가 흑인이었다.
미시간주 역시 전체 인구 중 흑인 인구는 14%지만 코로나19 감염자의 33%, 사망자의 41%가 흑인으로 나타났다. 위스콘신주의 최대 도시인 밀워키의 경우 흑인 인구는 26%였으나 흑인 사망자의 비중은 무려 70%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19 감염자 및 사망자 수치를 공개한 지자체 통계자료 등을 분석해 흑인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백인 다수 지역에 비해 감염률은 3배, 사망률은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제롬 아담스 공중보건국장도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코로나19는 흑인들에게 더 큰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미 온라인매체 복스는 “코로나19는 불균형적으로 흑인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흑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미국 사회가 오랜 시간 흑인들에게 가해온 인종차별의 결과라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흑인에 대한 오랜 차별의 역사가 흑인사회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낮추면서 건강 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CNN은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더 치명적”이라며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당뇨, 고혈압, 심장병, 폐질환 등 기저질환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아프리카계가 더 많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그들 다수가 기저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빈곤한 흑인들은 의료보험 접근성이 낮아 병원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대부분 비싼 사보험이라 흑인들의 보험 가입 비율은 백인에 비해 저조하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지역에 주로 형성돼 있는 흑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도 높은 감염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