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이…’ 6분만에 달려간 18살 형, 9살 동생 못 구하고 참변

입력 2020-04-08 18:05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내부. 연합뉴스(울산소방본부 제공)

울산 동구 아파트 화재로 숨진 형제 중 고등학생 형이 편의점에 간 지 불과 6분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초등학생 동생을 데리고 탈출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새벽 울산 동구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불이 나 해당 집 안에 있던 9세 동생이 숨지고, 18세 형이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의 CCTV 분석과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형은 이날 친구와 함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뒤 오전 3시59분쯤 아파트 단지 앞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과 아파트의 거리는 불과 150m였다.

형은 편의점에서 친구와 함께 1분30초가량 머물렀다. 음료수를 구입해 편의점 밖으로 나온 형은 집에 불이 난 것을 목격했고, 그대로 달려 1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때가 오전 4시5분쯤으로, 단 6분여만에 집에 도착했으나 이미 불이 번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친구가 119로 신고하는 사이 형은 집 안으로 들어가 안방에서 자고있던 동생을 거실 베란다 쪽으로 옮겼으나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형은 불길을 피해 베란다 창틀에 매달렸다가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형과 친구가 편의점에 가기 전 집 안 라면 냄새를 없애려고 촛불을 켜놓은 뒤 베란다 문을 열어놨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 당시 형제의 부모는 생업 때문에 집에 없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영업 준비 등으로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일 때문에 경주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어머니는 1년 전쯤 초등학생인 아홉 살 둘째 아들 교육을 위해 경주에서 직장을 구하고 그곳에서 단 둘이 생활하면서 울산 집을 오갔으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개학이 연기되면서 둘째 아들을 울산 집에 머물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역시 최근 경기가 어려워 식당을 하면서 비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 배달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아파트 주민은 “형제 사이에 나이 차이가 크게 나고, 동생이 예전에 사고로 다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형이 동생을 많이 아꼈다”며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