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의 부모,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416합창단의 일원이다. 이씨가 각별하게 여기는 노래는 ‘어느 별이 되었을까’. 이 곡의 노랫말엔 베란다에서 별을 바라보며 흥건한 그리움을 달랬을 이씨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서쪽 하늘에 있나 어느 별이 되었을까/ 내 어깨에 내려앉는 이 별빛 네 손길인가/ 새벽하늘에 있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새벽이 일렁이는 저 바다에 사랑하는 내 별이 뜬다/ 지지 않을 내 별이 뜬다.”
울음, 노래가 되다
‘어느 별이 되었을까’는 416합창단 단원들이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한다. 참사로 딸 예은이를 잃은 박은희씨는 “가장 마음 아픈 노래”라고 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바다에 발을 담그고 멀리 뱃머리만 나온 세월호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참사로 아들 창현이를 떠나보낸 최순화씨는 이 곡을 합창할 때만큼은 “아이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느낌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에는 이렇듯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2014년 12월 결성된 416합창단은 매주 월요일이면 강당에 모여 3시간 동안 연습을 하고 있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 가운데 그 주간에 생일을 맞은 ‘친구’가 있다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는 시간”을 가진다. 강당 뒤편에 버려진 땅을 개간해 소박하게 농사를 짓기도 했다.
공연을 요청하는 곳은 많았다. 이들은 270회 넘게 무대에 올랐다. 한국사회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향해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가령 2016년 3월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찾아 노래를 선물했다. 합창단 단원인 안영미씨는 “아픔을 가진 우리도 위로자가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출간된 ‘노래를 불러서…’은 크게 4부로 구성됐다. ‘노래여 날아가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는 합창단 단원들이 애창한 곡들의 가사와, 이들 노래에 담긴 단원들의 애틋한 사연이 적혀 있다. 2부에는 소설가 김훈과 김애란이 글이 등장한다. 김애란은 “내겐 이분들의 합창이 가끔은 노래가 아닌 누군가에게 아주 정성 어린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썼다.
“여기 자신들의 숨결로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 사이에 사다리를 놓는 분들이 있다. …슬픔 속에서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분들, 그렇지만 하루하루 일상을 꾸리기 위해 오늘도 용기를 내야 하는 분들. 노래에 기대, 노래가 되어 더 먼 곳을 향해 가시는 분들.”
김훈의 글도 인상적이다. 그는 “그들의 노래는 일상의 사소한 구체성에 바탕해 있었고, 사람의 목소리로 사람의 슬픔을 감싸서 슬픔을 데리고 슬픔이 없는 나라로 가고 있다”고 적었다.
여기까지 읽으면, ‘노래를 불러서…’을 이렇게 넘겨짚기 쉽다. 가없는 슬픔과 연민의 감정만이 한가득 담긴 책일 거라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한없이 까라질 거라고.
하지만 ‘노래를 불러서…’은 무겁기만 한 작품이 아니다. 단원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예컨대 단원들은 노래를 녹음할 때 스튜디오에 온갖 음식을 가져와 수다를 떨었다. 김밥 롤케이크 곶감 귤 오렌지 바나나 커피…. 음악 프로듀서인 류형선씨는 “(단원들에게) 합창은, 먹방집단이라는 자신들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공신력 있는 구실”이라는 농담 섞인 평가를 내놓는다.
3부에는 2014년 12월부터 최근까지 416합창단의 발자취가 담겼다. 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공연을 열었으며 아픔의 현장에서 노래했던 단원들의 소감은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다. 프로듀서 류씨는 이렇게 말한다. “합창단이 노래하니, 더 울어야 마땅했던 이들이 비로소 울었다. 아직 울고 있는 중인 이들은 통곡하며 울었다. 울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이 울었고, 우는 이들을 지켜보는 주변도 따라 울었다. 노래 부른 이들은 당연히 울었다.”
하늘에 띄운 편지
‘노래를 불러서…’는 책이면서 동시에 음반이기도 하다. 책에는 동명의 CD가 동봉돼 있다. 단원들이 매주 3일씩, 총 6주에 걸쳐 작업한 결과물이다. 합창단에 소속된 52명은 자신의 녹음 일정이 있는 날이면 녹음실로 향했다. 본인 녹음이 없는 날에도 동료를 응원하려고 스튜디오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책을 다 읽은 뒤 음반을 재생하니 아름다운 하모니가 흘러나왔다. ‘잊지 않을게’ ‘네버 엔딩 스토리’ ‘못 잊어’ ‘잘 가오 그대’…. 그러다가 9번 트랙에서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차례로 등장했다. 트랙 제목은 책의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는 제목이기도 한 단원들의 육성 편지 ‘하늘로 가는 우체통’이었다(책에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단원들의 ‘손글씨 편지’가 실려 있다). 단원들은 원고지에 써 내려간 짧은 편지를 보면대에 올려놓고 마이크 앞에 서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고 안부를 물었다.
“언제나 엄마 편이었던 시찬아!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보고 싶구나. 아들! 오늘 밤엔 엄마 꿈속에 와줄래?”
“지성아! 보고 싶다. 하늘나라는 행복하지? 이 땅엔 너를 향한 엄마의 사랑만 남았구나. 딸 사랑해~.”
“아빠가 울면 너도 울고 아빠가 웃으면 너도 웃겠지? 아빠는 오늘도 우리 아들 만날 날을 기다리며 웃어보련다. 부디 그곳은 착하고 따뜻한 곳이길 소망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태범아. 엄마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넌 여전히 열여덟 교복을 입은 소년에 머물러 있구나. 태범아, 못 해준 게 많아 미안해. 다음 생에도 내 자식으로 태어나줘. 사랑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