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책임 소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미국과 중국이 갑작스럽게 ‘휴전’에 들어갔다고 AFP통신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코로나19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이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장비 확보를 위해서 중국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 이를 명기하려고 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변신이 분위기 반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로부터 중국에 관한 질문을 받자 ‘우한 바이러스’라는 언급 없이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태임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지금은 모든 나라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로 고쳐서 기자회견을 할 만큼 해당 단어를 즐겨 썼지만 지난달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 이후 한층 누그러진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통화 후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우리는 긴밀히 일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날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나치게 중국 중심적이라며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 보류를 시사했으나, 중국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양국 대사들은 비난 대신 덕담을 주고받으며 이 기류에 힘을 싣고 있다.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는 지난 3일 대사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 등을 통해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올려 중국의 의료물품 대미 수출 지원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에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우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뉴욕을 비롯한 미국 등 많은 곳에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을 항상 기억할 것”이라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손을 맞잡을 것을 강조하며 화답했다.
지난달 12일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온 것일 수 있다”며 미국을 맹비난했으며,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미 국무부 대변인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이 미국 정부의 화를 돋운 지 한 달 만에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중 화해의 이면에는 미국의 감염자 급증 사태가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내 병원은 자금난과 인력난, 방역 물자 부족으로 코로나19 대응의 일선에 있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의료물자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는 자국 내 상황이 중국을 필요로 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미국외교협회(CFR) 아시아연구소장은 “워싱턴은 베이징이 대미 의료장비 수출을 금지할 정도로까지 사이가 멀어지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코로나19의 발원지에서 ‘후원자’ 역할로 변신을 꾀하는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갈등은 득이 될 게 없다고 진단했다.
미 국무부 산하 여론공작 대응부서인 ‘글로벌 인게지이먼트 센터’는 중국의 국영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미국에 코로나19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전직 미 대통령들의 아시아 고문을 지낸 더글러스 팔 카네기 평화연구소 부원장은 “중국의 목표는 트럼프를 조용히 시키고 불필요한 피해 발생을 예방하면서 미·중 사이의 채널을 계속 열어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무역, 인권, 남중국해 군사기지화 등 중국과 충돌하고 있고 중국 코로나19 혼란 속 남중국해 작전을 강화하고 있어 이 둘의 화해 분위기가 자칫 신냉전 분위기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