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대한문 월대, 제자리에 복원 안하는 이유는?

입력 2020-04-08 14:29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나라의 미래를 그렸던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지 100여 년 만에 제 모습을 찾는다. 그러나 원래 자리를 찾아 복원되는 게 아니라 1970년대 옮겨진 현 위치에 재현된다.
덕수궁 대한문 월대(1902-1903년경 촬영).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의 월대를 재현하는 설계를 이달 시작한다고 8일 밝혔다. 월대 재현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正殿), 종묘, 향교(鄕校)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말한다. 건축물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정전에는 반드시 설치됐다.

대한문은 원래 현 위치에서 서울광장 방향으로 33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월대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고, 대한문은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며 지금 자리로 밀려났다. 덕수궁관리소는 “인근 태평로의 보행과 교통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대한문과 월대를 원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원위치와 형태, 크기에 대한 철저한 원형고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문 이전 시기가 일제강점기가 아닌 1970년인 만큼 역대 정권의 정책적 판단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화문 월대 복원이 교통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점도 반면교사가 됐다.
현재의 덕수궁 대한문.

덕수궁 대한문은 원래 이름이 ‘대안문(大安門)’이며, ‘황성신문’ 등의 기록으로 봐서 1898년경부터 지은 것으로 파악된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보수하면서 1906년에 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대한문의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돼 1900년 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문 월대는 고종이 환구단이나 왕릉으로 행차할 때 사용했고, 1910년 대한제국의 명운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존재하며 궁궐 정문에서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목격했다. 그랬던 월대는 1919년 고종 국상 때는 보이지 않아 그 전에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