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줄도산 위기’에 처한 항공 산업 지원 규모를 두고 정부와 업계 간의 시각차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앞서 저가항공사(LCC) 대상 3000억원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항공업계는 ‘규모가 너무 작고 대형항공사의 지원은 빠져있다’며 추가 지원책을 요구한다. 반면 정부는 “항공 산업은 항공기 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부채비율이 원래 크다. 자본 확충, 경영 개선 등 종합적인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며 무조건적인 지원에 신중한 입장이다.
실제 업계 안팎에선 현재 항공 산업의 위기가 감염병 단일 요소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인지, 현금 자원이 부족한 항공사 난립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과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코로나19 전에도 과당 경쟁으로 적자
대다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 이미 항공업계가 포화상태였다고 본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017년 전후 항공산업이 크게 수익을 내면서 ‘비행기를 띄우기만 하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며 “2018년 이후 7곳 항공사들이 출혈경쟁을 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새로운 사업자들도 지역 정치권과 결합해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 면허를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공개한 20개국의 GDP, 1인당 출국자 수, 1인당 항공운송객수 등을 지난해 말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항공사 1곳, LCC 3.5개 정도가 적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황 교수는 “대형항공사는 2곳, LCC는 8곳이 넘는 국내 항공업계가 과잉 경쟁 상태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는 사상 최대 여객 수(1억2336만명)를 기록했는데도 국내 항공사 8곳이 모두 적자를 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재팬 운동과 코로나19가 겹치면서 항공업계의 열악한 재무상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유류비, 항공기 리스비용 등 고정비용이 큰 항공산업은 현금 전환이 빨라 돈줄이 막히기 시작하면 금방 망한다”며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난달부터 이미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전 세계 항공사가 두 달안에 모두 망한다’는 전망이 나왔다”고 말했다.
1월 말과 3월 말 수익 비교해 지원 규모 정해야
전문가들은 각 항공사들의 코로나19 피해 규모를 파악해 감염병 직전의 재무 상태까진 회복시켜야한다고 제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항공업계가 적자였던 건 맞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누구 탓도 아닌 재난으로 인한 피해기 때문에 정부가 지금보다 지원을 더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도 “이대로라면 대형항공사까지 모두 도산한다”며 “그렇다고 일부 항공사만 지원해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기간산업 보호 차원에서 싱가포르,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지원 규모만큼은 해줘야한다”고 덧붙였다.
일시적인 위기만 면하게 해주면, 이후엔 항공업계가 시장의 논리에 따라 다시 재편돼 균형을 찾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허 교수는 “미국에선 이미 90년대에 항공사들이 과잉 경쟁을 펼치다가 100여곳이 도산한 경험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코로나19를 계기로 항공산업에 무작정 뛰어드는 사업자들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구제금융 총액을 정해놓고 각 사에게 나눠주는 식의 정부의 현재 지원책은 세밀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1월 말과, 이후인 3월 말의 수익 변화를 항공사별로 일일이 파악해 피해 규모에 맞는 지원을 해줘야한다”며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자본잠식에 빠져있던 기업까지 모두 도와줄 순 없다”고 강조했다.
한재현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911테러 당시 항공사 지원책을 보면 항공업계 전부를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전문 위원회를 꾸려 테러 이전의 경쟁력과 재무구조를 따져 선별 지원했다”며 “국내 항공사 역시 자구 노력과 경쟁력 등을 따져 지원 규모를 엄정하게 가려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