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법관 출신 고민은 ‘서오남’ 중심의 한계 자성이 출발점

입력 2020-04-07 17:24


일부 대법관을 비판사·비법조인 출신으로 두자는 논의와 대법관 숫자를 늘리자는 등의 제안은 결국 최고법원의 최종 심판 과정을 지금보다 충실하게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대법관들 앞에 놓이는 상고(上告) 사건이 연간 5만건에 달할 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겠느냐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법관)’ 중심 대법관 구성 한계를 깨야 한다는 자성도 계속됐다.

법조계는 ‘비법조인 대법관’을 보게 될 때까지 갈 길이 멀 것이라고 한다.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방안이 도출되더라도 국회의 입법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다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을 강조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논의가 그간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와는 차별화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법조계에 있다.

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매월 회의를 진행해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등 상고심 심리 체계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취합했다. 이 과정에서 대법관 구성 다양화, 대법관 증원 필요성 등도 자연스레 논의됐다. 고위 법관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갖춘 이들을 대법관으로 임명하자는 논의는 사회적 공감을 얻은 상태다. 법원조직법이 현재까지 ‘20년 이상 경력의 판사·검사·변호사 및 변호사 자격을 가진 공공기관 경력자·교수’를 대법관 임명제청 대상으로 규정해온 취지도 다양성이었다.

하지만 법학계는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 대법관 구성 규정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연방헌법과 법률에 대법관의 연령, 변호사 면허 등 자격요건을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대통령이 누구든지 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성별은 물론 인종과 종교, 심지어 성적 지향의 면에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로 구성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사법 체계에 많은 영향을 준 일본도 대법관(최고재판소 재판관)에 대한 자격 규정은 강력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대법관 15명 중 10명은 판사·검사·변호사·법학 교수 등으로 구성되지만 나머지 5명은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대법관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 특위의 아이디어 취합 과정에서도 외교관과 행정관료를 대법관으로 두는 일본 사례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 증원은 한때 도입이 추진되던 ‘상고법원’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거론됐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사실상 ‘4심제’가 되고, 늘어난 비용은 국민 부담이라는 지적이 그간 많았다. 그렇다면 대법관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것이 재판의 품질을 높일 다음 방책이라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관 3명만 증원해도 사건 부담이 20%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법관 구성 논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심리 범위와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주제로 나아가게 된다. 특위 차원에서는 대법관을 늘려 재판부를 이원화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곳은 사법(私法) 재판부로서 민사와 노동 사건을 담당하게 하고, 또 다른 재판부는 공법(公法) 재판부로서 형사와 행정, 조세 사건 등을 맡게 하는 아이디어다. 물론 아이디어 수준의 논의가 현실화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의 위상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사법부 이기주의’ 인상을 깨고 국민적 설득을 얻느냐가 숙제”라고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