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언하는 데 동의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최근 급증했음에도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다가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긴급사태 선언과 함께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부양책도 내놨다.
긴급사태 선언을 내릴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던 아베 총리가 7일 코로나19 긴급사태 선언을 단행한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가 최근 긴급사태 관련 논의를 계속해왔지만 “경제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쳤다고 이날 전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2인자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 3일 긴급사태 선언을 촉구하는 다른 각료에게 “경제가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나빠져 후들후들거리게 된다”고 반박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매체는 “아베 정권의 중추를 떠받쳐온 두 사람의 의견이 총리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긴급사태를 선언해야 한다는 여론은 높아졌고, 지난 4일 도쿄 확진자가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서고 의료 붕괴에 대한 위기감이 스며들자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 현지 언론과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노믹스에 의한 경기 회복’은 정권의 구심력을 유지해 온 원동력”이라며 “그간 경기 후퇴 우려 때문에 아베 정부가 신중했다”고 보도했다.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비판했다. 요코쿠라 요시타케 일본의사회 회장 역시 “속도감 있게 대응해달라고 줄곧 부탁했는데 겨우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정황을 입증하듯 아베 총리는 6일 긴급사태 선언 의향을 밝히면서 사상 최대 규모인 108조엔(약 1210조원)의 긴급 경제 대책을 함께 시행한다고 밝혔다. 자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제 대책이 정리됐으니 긴급사태 선언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등은 이번 경제 대책이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부양책에는 가구당 30만엔(약 340만 원)을 지급하고 중소기업에는 최대 200만엔(약 2240만원)을 지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번 경제 대책은 2008년 리먼 사태 직후인 2009년 4월 당시 아소 다로 정권이 내놓은 기존 사상 최대 규모였던 56조 8000억원 경제 대책을 뛰어넘는 규모다. 이번 대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의 ‘긴급 지원 단계’와 그 후 ‘V자 회복 단계’ 등 2단계로 실행된다.
일본 정부는 감염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정보기술(IT) 기업이 보유한 이용자 정보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뒤늦게 검토 중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가 업계에 요청한 정보는 법령상 개인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데이터에 한정되며 개인이 특정되지 않은 통계적 가공이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도쿄 시민들이 지방으로 속속 ‘탈출’하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방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의료체제 붕괴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실시하는 봉쇄령과 달리 이동제한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같은 우려는 더욱 커진다. 긴급사태 선언은 지난달 개정된 신종 인플루엔자 특별조치법에 근거한 것으로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이 계속되며 쇼핑과 출퇴근 등도 허용된다. 지방자치단체 지사들이 주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도록 요청할 수는 있지만 외출한다고 해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는 휴교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확진자 수가 폭증한 것이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예정대로 7월에 개최하기 위해 코로나19 검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쿄올림픽 연기가 결정된 이후 도쿄를 중심으로 감염자가 급증했고, 지난 6일 기준 감염자는 4804명으로 나타났다. 도쿄 확진자만 1116명에 달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