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 일당, 유망 스타트업 기업도 사냥… ‘보증계약’ 덫으로 활용

입력 2020-04-06 16:23 수정 2020-04-06 19:45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기업사냥’이 4차 산업으로 유망한 모빌리티(이동수단) 스타트업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라임 핵심관계자와 그들과 결탁한 기업사냥꾼들은 피해자들의 펀드투자금으로 자본력이 허약한 스타트업 기업을 인수·합병(M&A)한 뒤 실질적 투자 없이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치장하는 데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주식매매 보증계약’을 일종의 덫처럼 활용해 스타트업 기업 주주들의 주식을 가져오는 수법도 나타났다. 검찰은 ‘라임 일당’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챙겼는지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라임 일당의 기업사냥 행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마트버스’를 선보인 위즈돔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을 놓고 벌어졌다. 라임은 자동차 전장 생산업체 에스모에 전환사채(CB)를 사들이는 식으로 수백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이 자금 중 일부는 에스모의 자회사인 DA테크놀로지를 거쳐 2018년 말 위즈돔 지분(구주) 28%를 사들이는 데 투입됐다. 위즈돔 한상우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본력이 있는 코스닥 상장사가 조그만 스타트업 기업에 관심을 가져주니 처음에는 고맙게만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분인수로 단일 최대주주가 된 이후 에스모그룹 측은 위즈돔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 대표는 “위즈돔 구주를 사서 지분율을 높이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일부 단기대여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고, 사업적 시너지도 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위즈돔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에스모그룹 전체의 치적처럼 홍보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을 뿐이란 설명이다. 업계에선 에스모그룹의 이런 행태가 에스모와 DA테크놀로지의 시장평가 상승을 노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위즈돔의 지분거래 역시 에스모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에스모 측은 위즈돔 주식 28%의 대부분을 위즈돔 주요주주였던 오아시스홀딩스와 한 대표로부터 총 409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에스모 측은 한 대표와 오아시스홀딩스에 이 매각대금으로 DA테크놀로지 유상증자와 CB 매입에 참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때 에스모 측은 보증계약이라는 덫을 놓았다. 향후 위즈돔의 가치가 실제 거래 당시 금액보다 낮게 평가될 경우 한 대표와 오아시스홀딩스가 스와프 계약 형태로 보유하게 된 DA테크놀로지 주식을 모두 반환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적혔다.

한 대표는 “올해 초 한 회계법인의 평가결과 위즈돔 가치가 그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보유한 DA테크놀로지 주식을 모두 다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한 대표와 오아시스홀딩스는 기존에 보유했던 위즈돔 주식을 에스모 측에 팔고, 그 대가로 받은 DA테크놀로지의 주식까지 반환하게 된 셈이다. 한 대표와 오아시스홀딩스가 반환한 DA테크놀로지 주식은 이후 소각됐다.

업계에선 이번 일을 라임 일당이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유망한 스타트업을 탈취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안으로까지 보는 분위기다. 그는 “주식은 주식대로 다 넘겨주고 세금은 세금대로 내며 손해만 입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책임을 다하면서 이 일에 더 엮이지 않게 돼 다행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현수 정우진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