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상승세가 가파르다. BBC 인기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다. 지선우가 서늘한 역습을 시작한 최근 4회 시청률은 15%를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에 밤 11시 편성이라는 악조건에도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안방을 차지했다.
밀도 있는 심리 묘사와 함께 이어지는 빠른 전개는 기존의 불륜 드라마와는 확연히 달랐다. 사실을 알아채고 발톱을 드러내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단 4회 만에 상황을 역전시켰다. 최근 화에서 지선우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에 반격을 시사했다. 이태오는 오랫동안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아들 보험금으로 내연녀에게 명품을 선물하는, 친모 장례식장에서도 밀회를 즐기는 인물이다. 믿었던 남편의 껍질이 벗겨질 때마다 지선우는 도리어 침착해졌다. 인생 유일한 오점인 이태오만 사라지면 그만이었다.
복수 상대는 더 있다. 주변 모두가 공모자였다. 불륜 상대는 자신의 환자 엄효정(김선경)의 딸 여다경(한소희)이었다. 남편의 동창인 손제혁(김영민)과 그의 아내 고예림(박선영), 동료 설명숙(채국희)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했다. 심지어 관전하며 즐기고 있었다. 지선우는 의도적으로 손재혁과 하룻밤을 보낸 뒤 “여자라고 바람피울 줄 모르는 거 아냐.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려고 자제하는 거지. 이런 짓 그 정도만 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했다.
지선우의 이 대사는 부부 관계를 받쳐주는 믿음의 가치를 지적하고 있었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각기 다른 선택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장면마다 관계의 본질을 묻고 또 답을 고민하게 만든다. 몰입감은 여기서 시작된다. 몰아치는 전개 속에서도 각 인물의 심리를 촘촘하게 풀어내면서 함께 분노하도록 이끌었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적막한 공기와 싸늘한 눈빛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했고, 생각이 길어지게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루할 틈 없이 사건이 터지고 그 안에서 인물 간 미묘한 갈등과 심리를 그려냈다”며 “위선적인 민낯에 분노하다가도 가감 없는 속내를 드러낼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희애는 지선우가 겪는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온전히 그에게 몰입하게 했다”며 “분노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건 감정을 증폭해 보여주고 있는 연기력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