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이 방역구멍?’ 빅데이터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이슈&탐사]

입력 2020-04-06 09:00 수정 2020-04-06 14:17

서울 강남구에서 소규모 IT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지급할 월급을 빌리기 위해서라도 돌아다녀야 한다. 김씨는 “쉰 살 정도 살고 나니 ‘걸리면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50대 남성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가장 미흡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일보가 6일 서울시의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민들의 외출 자제가 정점에 이른 지난 3월 초 서울 주요 업무 및 상업 지역에서 50대 남성의 생활인구 감소폭이 가장 작았다. 생활인구는 특정 시점, 지역에 존재하는 인구다. 낮에는 업무 및 상업 지역에 생활인구가 많고 밤에는 주거 지역에 생활인구가 많다.

이는 50대 남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평소처럼 출근하거나 외출을 했다는 뜻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폭발적 확산세를 보일 경우 50대 남성이 감염에 가장 취약한 집단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국민일보는 지난 1월 11일부터 3월 28일까지 서울의 주요 업무 및 상업 지역으로 분류되는 행정동 5곳과 주거 지역 행정동 4곳의 내국인 생활인구 추이를 특정 시점별로 분석했다. 분석 대상 업무 및 상업 지역은 역삼1동과 종로 1~4가동, 여의도동, 명동, 서교동이다. 주거 지역은 관악구 성현동과 도봉구 쌍문4동, 동작구 사당3동, 은평구 응암2동을 분석했다. 서울시와 KT는 공공 빅데이터와 통신데이터를 이용해 생활인구를 추계하고 이를 행정동별로 공개하고 있다.

업무 및 상업 지역은 2월 말과 3월 초 생활인구가 급감했다.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최고조였던 시기 시민들이 이곳으로의 외출을 자제했다는 얘기다. 종로 1~4가동의 3월 2일(월요일) 오후 2시 기준 생활인구는 10만9264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전 월요일인 1월 13일 오후 2시 15만4688명에 비해 29.4%가 줄었다. 역삼1동도 같은 시점 생활인구가 18.6% 감소했다.

생활인구 감소 현황을 성·연령대별로 들여다 봤더니 50대 남성의 감소 폭이 가장 작았다. 역삼1동의 경우 20대 여성은 25.2%, 남성은 24.5% 생활인구가 줄었고 30대 여성과 남성도 각각 18.5%, 15.8%씩 줄었다. 40대는 여성 16.2%, 남성 9.3% 감소했다. 50대 남성이 6.2% 감소해 가장 적게 줄었다. 50대 여성은 14.0% 감소했다.


종로 1~4가동과 여의도동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종로 1~4가동의 1월 13일 대비 3월 2일 50대 남성 생활인구는 15.8% 감소해 전체 성·연령대별 중 감소 폭이 가장 낮았다. 여의도에선 50대 남성을 포함한 40~60대 남성 생활인구가 비교적 덜 줄었다.

대표적 상업지역인 명동에서도 50대 남성 생활인구는 1월 13일 7707명에서 3월 2일 6702명으로 13.0% 줄었다. 이 기간 10대 여성과 남성은 각각 66.3%와 59.2%가 줄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시점에서 50대 남성 생활인구가 덜 변화한 건 이들 상당수가 기업에서 간부 위치에 있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영업자라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간 50대 남성이 많다는 얘기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50대 남성은 사회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집단이고 자영업자도 많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경제활동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심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40대만 해도 맞벌이가 많지만 50대는 외벌이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상당수가 평소처럼 행동했다는 것은 주거 지역 생활인구 분석에서도 드러났다. 아파트와 주택 비중이 높은 서울 관악구 성현동에서 30, 40대 남성은 3월 2일 각각 12.4%, 17.5% 생활인구가 증가(1월 13일 대비)했다. 집에 머무른 30, 40대 남성이 평소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50대 남성은 생활인구가 1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지역의 10대, 20대, 30대 여성 생활인구는 모두 20%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서울시도 자체 분석 자료에서 50대 남성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 분석결과 및 시사점’(3월 8일까지 분석)에는 “상권 지역 50대 남성의 사회적 거리두기 참여가 가장 저조하다. 연령별, 성별 참여를 강화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50대는 직장 등 각자 위치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어 불가피한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다른 성별·연령대와 (사회적 거리두기) 목표치 자체를 동등하게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목표를 달리 설정하고 그 기준치를 넘어서면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